윤휘(尹暉)
이듬해 병조정랑이 되고 이어 사서·장령·필선·사간 등을 거쳐, 전라도·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치적을 올렸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에 관련, 벼슬에서 쫓겨났다가 뒤에 다시 기용되었고, 1618년 동지 겸 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공조·예조의 참판을 거쳐,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장흥·아산 등지에 유배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기용되어 한성부좌윤·청주목사, 호조와 형조의 참판을 지냈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특명전권대사로 적진에 출입하면서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후 도승지에 임명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고, 한성부판윤·형조판서를 거쳐 1639년 우찬성으로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고, 1641년 공조판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