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영(摠理營)
그러나 정조가 승하하자 왕권이 극도로 약화되면서 1802년(순조 2) 1월에 장용영도 혁파되었는데, 이때 장용외영도 그 규모를 대폭 축소하여 총리영을 수원에 두고 화성의 관리·방어를 담당하게 하였다. 관원으로는 사(使 : 수원유수가 겸임) 1인, 중군(中軍) 1인, 종사관(從事官 : 수원판관 겸임) 1인, 별효장(別驍將) 2인, 파총(把摠 : 진위·용인·안산·과천·시흥의 수령과 평신첨사가 예겸, 이 밖에 6인은 무관을 지낸 자 중에서 차출) 12인, 척후장(斥堠將 : 영화도찰방이 겸임) 1인, 초관(哨官) 25인, 교련관(敎鍊官) 8인, 지구관(知彀官) 10인, 별군관(別軍官) 100인, 수첩군관(守堞軍官) 12인, 별효사(別驍士) 200인으로 편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