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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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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의 효과적인 진행과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부르는 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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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효과적인 진행과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부르는 민요.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일의 지루함을 잊고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부르는데, ‘작업요’라고도 한다. 노동을 하면서 무슨 노래든지 부를 수 있겠으나, 민요로서 오랫동안 집단적으로 전승되어 온 노래만 노동요라고 하는 것이 관례이다.
노동요는 의식요나 유희요와 함께 일정한 생활상의 기능을 가진 기능요에 속하며, 기능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민요는 원래 노동요에서 시작된 다음 다른 기능요로 전용되고, 일정한 생활상의 기능을 가지지 않은 비기능요로 바뀌기도 했다는 것이 유력한 견해이다.
노동요는 노동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므로 노동에서의 기능, 노동의 형태에 따른 가창 방식, 노동의 종류에 따른 구분 등의 측면에서 주로 고찰된다. 노동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민속적 관점, 음악적 관점, 문학적 관점이 아울러 요청된다.
노동요는 우선 노동의 효과적인 진행을 위하여 필요하다. 행동 통일을 하면서 일제히 움직여야 하는 노동을 하는 경우에는, 목도메기·보리타작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일정한 율동을 말로 되풀이해야 손발이 맞을 수 있다.
되풀이하는 말이 ‘영차 영차’, ‘에호 에호’라고 하듯이 뜻을 지니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것마저도 노동요에 포함된다. 노동요는 처음에 그런 형태로 시작된 다음 차차 사설이 붙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노동이 워낙 급박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숨 돌릴 틈이 없는 경우에는 사설이 생겨날 여지가 없다.
물레질이나 절구질을 할 때처럼 노동을 혼자서 하더라도 일정한 동작을 계속 되풀이해야 하는 경우에는 손놀림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른다. 이 때는 여음은 없고, 노래의 가락이 되풀이되며, 사설은 일하는 사람의 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노동요는 노동의 율동과 노래의 율동이 일치하지 않거나 일치할 수 없는 경우에도 필요하다. 가령 모내기·논매기·삼삼기 등의 노동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하지만 각자 자기대로 손을 놀릴 따름이지 일제히 움직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노동을 할 때면 대체로 노동 진행 속도에 맞추어서 노래의 율동을 관습적으로 정해 놓고서,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노래 사설로 삼는다. 노동이 오랫동안 지루하게 계속되어도 노래를 함께 부르면 지루함을 잊을 수 있고, 육체적인 협동이기만 한 공동 노동을 정신적인 협동으로 고양하게 된다.
이처럼 노동요는 노동의 능률을 높이고, 함께 사는 즐거움을 나누는 데 있어서도 긴요한 구실을 한다. 공동 노동의 조직을 흔히 ‘두레’라고 하는데, 두레는 노래를 함께 부르는 조직이기도 하다. 길쌈은 공동으로 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여럿이 한자리에 모여 ‘두레삼’을 삼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즐기는 것이 오랜 관습이다.
노동요는 그뿐만 아니라,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나타내 주는 구실을 한다. 매일, 농사·고기잡이·길쌈 등을 하는 데 몰두하며 조용히 앉아서 자기 생활을 되돌아볼 겨를이 없으며, 글로써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노동요를 부르는 것 자체가 예술 창작 행위로, 이미 전해지고 있는 사설에 견주어서 자기 자신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간직한 사연을 새롭게 나타내기도 한다.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을 익히고, 일을 잘 할 수 있는 방도를 차리는 데 우선 관심을 모으면서 노동 행위와 자기의 의식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하겠는데, 이렇게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보람, 또는 괴로움과 시련을 나타내는 데 노동요는 필수적인 구실을 한다.
이와 함께, 노동 행위와는 직접 관련되지 않은 것이라도 살아가는 데서 문제가 되는 경험을 하소연할 수 있게 한다. 길쌈을 하면서 시집살이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노동의 형태는 노동요를 부르는 사람들의 조직, 노래를 부르는 가창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에 따라서 노동요를 구분해서 살필 수 있다.
노동의 형태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같은 동작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동작은 각기 자기대로 해도 좋은가, 일을 지휘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들이 구분되는가 아니면 누구나 같은 자격으로 일을 하는가, 공동 노동인가 아니면 개인노동인가에 따라서 나눌 수 있으며, 이러한 기준을 적용시켜 보면 몇 가지 경우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제히 같은 동작을 하며, 누구나 같은 자격으로 일하는 공동 노동, 예컨대 목도메기 같은 것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는 사설은 없고 여음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예사이다.
여음은 오랜 관습에 따라 고정되어 있으며, 노동에 참가하면 힘들이지 않고 바로 익힐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노동요 중 가장 단순한 형태이며,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자세하게 고찰할만한 내용을 갖추지 않았다.
일제히 같은 동작을 하며, 지휘자가 있어서 노동과 노래를 함께 이끌어나가는 공동 노동, 예컨대 보리타작이나 상여메기 같은 것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는 사설과 여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휘자가 선창자 노릇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후창자 노릇을 하면서 부르는 선후창의 민요이다. 선창자는 앞소리꾼 또는 소리 ‘메기는’ 사람이라하고, 후창자는 뒷소리꾼 또는 ‘받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선창자는 사설을 노래하면서 일을 지휘하는 한편 일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고, 후창자는 여음만 되풀이하면서 일에 열중한다.
그러면서, 보리타작을 할 때에는 선창자인 ‘목도리깨꾼’이 자기자신도 도리깨질을 하면서 모든 일을 주선하고 후창자인 ‘종도리깨꾼’은 그 지휘대로만 하지만, 상여메기를 할 때에는 선창자는 상여 위에 오르거나 앞에 서서 노래 사설로 흥을 돕기만 한다.
각기 자기대로 일을 하되, 지휘자가 있어서 노동과 노래를 함께 이끌어나가는 공동 노동, 예컨대 논매기 같은 것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또한 사설과 여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창자는 사설을, 후창자들은 여음을 노래하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차이점은 선창자의 사설이 노동의 동작 자체를 지휘하는 것은 아니므로 노동과 관련이 없는 내용으로도 자유롭게 구성될 수 있다는 데서 발견된다. 논매기노래의 선창자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아도 그만이며, 일하는 사람들 앞에 서서 춤이라도 추면서 목청 좋은 소리로 노래사설을 잘 엮어낼 수 있으면 훌륭한 자격을 가진다.
각기 자기대로 일을 하며, 누구나 같은 자격으로 일하는 공동 노동, 예컨대 모내기 같은 것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는 사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구든지 어떤 사설을 노래 부르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부른다. 사설은 노동 행위와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 오래 전승되어 널리 알려진 것이라야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두 패로 나누어져서 노래를 한 줄씩 주고받으면서 부르는 교환창의 형태를 택하기도 한다. 교환창으로 부르는 노래는 주고받으면 노래 한편이 끝나도록 되어 있는 짧은 형식이다.
각기 자기대로 일을 하며, 개인 노동일 수도 있는 노동, 예컨대 삼삼기 같은 것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또한 사설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개인 노동일 수 있는 것도 필요에 따라서는 함께 모여 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노래의 형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개인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부르는 사람이 듣는 사람이므로 노동의 동작에 맞추어서 가락은 고정되어 있는 편이나 사설은 자유롭게 택할 수 있다. 여럿이 한자리에서 노동을 하는 경우에는 듣는 사람들의 요구나 관심에 따라서 사설을 택하고, 제창을 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지적해야 할 사실은 노동이 격렬한 동작을 요구하면 노래는 간단한 것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고, 노동이 완만한 동작으로 이루어지면 노래는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문학적 형식을 구분하는 음보를 들어서 이 점을 설명하면, 간단한 노래가 1음보 또는 2음보로 이루어져 있다면, 복잡한 노래는 3음보 또는 4음보로 이루어져 있다.
1음보 또는 2음보로 이루어진 노래는 형식의 변이가 허용되지 않고 정해진 음보를 반드시 되풀이해야 하지만, 3음보 또는 4음보로 이루어진 노래는 더러 음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형식이 다소 자유로운 편이다.
노동과 관련되어 이렇게 정해진 형식은 시가 율격 전반의 공통적인 기반으로 작용한다. 다같이 4음보인 노래도 모내기노래, 해녀노래처럼 두 줄 형식으로 짧게 끝나는 것도 있고 길쌈노래처럼 길게 이어진 것도 있는데, 앞의 것은 시조 형식과 대응되고, 뒤의 것은 가사 형식과 대응된다.
노동요를 문학 장르의 개념에 따라 구분해 본다면, 교술민요·서정민요·서사민요가 두루 발견된다 할 수 있다. 노동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필요한 내용을 서술하는 것은 교술민요라 할 수 있고, 일하는 사람의 느낌을 나타내는 데 관심을 가진 민요는 서정민요라 불러도 좋다.
그런가 하면, 서사민요는 완만한 동작으로 길게 이어지는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에서 발견되는데, 길쌈노래가 그 예이다.
오래 전승되어 온 노동마다 거의 예외가 없이 노동요가 있었겠으나, 생활이 달라지면서 노동의 종류나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 노동요를 조사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도 있다.
노동의 종류나 방식이 지역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데, 전국적인 규모의 조사를 한 다음 그 성과를 비교하여 고찰한 업적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두 가지 조건에 따른 한계는 있으나, 노동의 종류에 따른 노동요의 종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파악된다.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는 밭농사에 관한 것과 논농사에 관한 것으로 또한 심기·매기·거두기에 각기 관련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나눈 농업노동요의 종류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밭농사에 관한 노래는 강원도나 제주도 같은 밭농사 위주의 지역에서 널리 부르고 있으며, 그 밖의 지역에서는 뚜렷하지 않은 편이다. 심기노래는 밭농사의 경우에 밭갈이를 할 때 부르는 것이고, 논농사의 경우에는 못자리에서 모를 뽑아내면서 부르는 「모찌기노래」와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모내기노래」이어서 대조적이다.
「모찌기노래」는 가지 수도 한정되어 있고 널리 부르지 않으나, 그냥 ‘모노래’라고도 하는 「모내기노래」는 논농사를 하는 고장이면 어디서나 아주 다채롭고도 풍부하게 전승되고 있다. 거두기노래는 밭농사 쪽의 「보리타작노래」만, 「밭갈이노래」나 「밭매기노래」가 없는 고장에서도 널리 전승되고 있고, 논농사 쪽의 것은 발견되지 않는데 원래부터 그랬던가는 의문이다.
어업노동요는 농업노동요만큼 풍부하지 않다. 「배젓기노래」·「고기후리기노래」·「그물당기기노래」 같은 것이 그 예이며, 「그물당기기노래」는 그물을 손으로 당기면서 부르는 것과 기계로 당기면서 부르는 것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주도의 「해녀노래」도 어업노동요의 한 갈래라고 보아야 하겠으나,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것은 아니고 노동을 하는 사이에 부른다는 점이 특이하다.
주로 남자들이 하는 그 밖의 여러 형태의 노동은 합쳐서 잡역이라고 부를 수 있고, 이에 따라서 잡역노동요라는 커다란 항목을 설정해도 좋다. 가마·목도·상여 등을 메고 가면서 부르는 운반노동요, 땅을 다지고, 말뚝을 박고, 달구질을 하면서 부르는 토목노동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거나 꼴을 베면서 부르는 채취노동요 같은 것들이 이에 속한다.
「상여소리」와 「달구질소리」는 장례 절차에 따라서 부르는 것으로서 노동요이자 의식요인데, 다른 어느 것들보다도 오늘날까지 잘 전해지고 있다. 땅을 다지면서 부르는 노래는 그 땅이 집터인 경우에는 지신밟기를 겸할 수 있다.
말뚝을 박으면서 부르는 노래는 흔히 ‘망께소리’라고 한다. ‘망께’라는 이름의 커다란 쇳덩이에 줄을 달아서 여럿이 함께 끌어당기면서 부르는 것이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지방에 따라서 ‘어사용’이라고 한다. 태백 산맥 지역에서 들을 수 있는 이 노래는 혼자서 신세타령을 하는 구슬픈 가락과 사설로 이루어져 있다.
여성의 노동요로서는 길쌈노래가 대표적이다. 길쌈을 하는 과정에서 실을 뽑으면서 부르는 「삼삼기노래」와 「물레노래」가 있고, 베를 짜면서 부르는 「베틀노래」가 있다. 어느 것이나 노동요 중에서 사설이 특히 풍부하며 여성 생활의 여러 가지 사연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널리 주목된다.
내용을 보아서 시집살이노래라고 하는 것도 대부분 길쌈노동요이다. 「베틀노래」는 베를 짜면서 부르는 것이기도 하고, 베를 짜는 과정을 노래로 엮어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뒤의 것은 노동요에서 파생되어 이미 노동요가 아닌 비기능요의 한 예가 된다.
여성이 하는 노동에는 이 밖에 방아를 찧고, 맷돌질이나 절구질을 하면서 부르는 것도 비교적 널리 분포되어 있는 편이다. 「방아타령」은 원래 이러한 노동요였는데, 일찍부터 비기능요로 분화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맷돌노래」와 「방아노래」는 같은 것을 양쪽에서 다 부르기도 한다. 제주도 같은 데서는 「맷돌방아노래」도 흔하지만, 여자들이 갓 제조에 필요한 양태를 만들면서 부르는 「양태노래」를 풍부하게 전승하기도 한다.
여성 노동요로서 「자장가」와 「빨래노래」도 있다. 「자장가」는 아이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는 노래이지만 노동요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래를 모두 합쳐서 여성의 잡역노동요라고 부를 수 있다.
노동요는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노동 그 자체를 하면서 창조해 온 음악이고 문학이라는 점에서 문화 창조의 양상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음악이나 문학이 그만큼 필수적인 것임을 입증해 준다.
사회가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화된 다음에는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자기표현 방식이라는 점에서 노동요는 기층문화로서 작용해 왔으며, 민요의 여러 다른 형태는 물론 상층의 시가를 산출하는 모체 구실을 한 점 또한 주목된다.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지난 시기의 노동요는 그대로 유지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그 유산은 오늘날의 예술로 풍부하게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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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1995년)
조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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