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처마를 더 많이 돌출시키기 위해 외목도리를 활용하는 구조체를 말한다. 주심포 건축은 외목도리를 기둥 상부에 놓이는 공포(주상포(柱上包))로만 지지하는데 반해서, 다포 건축은 기둥 사이의 공포(주간포(柱間包))와 함께 외목도리를 지지하는 방식이다. 다포 건축의 방식은 외목도리를 훨씬 효율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방식인데다가, 기둥 사이에 위치한 처마의 처짐을 방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다포 건축에 사용하는 건축 부재 중 주심포 건축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는 평방(平防)이 있다. 거의 모든 건축 부재는 단면의 폭에 비해 높이를 높여서 사용한다. 같은 면적을 갖는 부재라면 높이가 높은 것이 훨씬 하중에 잘 대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평방은 높이가 낮고 폭을 넓게 가공하는데, 이는 주간포의 주두를 얹기 위함이다. 따라서 높이가 낮은 평방만으로는 주간포의 하중을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평방 아래에 놓이는 창방(昌防)을 주심포 건축에 비해 훨씬 두껍게 가공해서 평방을 보완하고 있다.
주심포 건축은 첨차를 매우 화려하게 조각하는 데에 반해 다포 건축은 첨차에 거의 조각을 하지 않는다. 왼쪽과 오른쪽 끝을 수직으로 곧게 잘라 낸 다음, 하부 모서리를 둥그렇게 가공한다거나 빗자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나의 건물에는 많은 수의 첨차가 사용되기 때문에 이를 모두 세밀하게 조각할 경우 장식이 지나칠 우려가 있다. 간혹 주심포 건축과 같이 연화두형의 첨차를 사용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최외곽 출목의 첨차와 같이 제한적인 곳에만 사용한다. 부안 개암사 대웅전과 익산 숭림사 보광전은 첨차의 양옆에 꽃무늬를 화려하게 조각한 독특한 사례에 해당한다.
다포 건축의 첨차는 기본적으로 각 출목마다 2개씩 사용하며, 최외곽 출목에는 하나의 첨차만 사용한다. 크기에 따라 하부의 첨차를 소첨, 상부의 첨차를 대첨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현재의 출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포(包)’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외1출목은 3포, 외2출목은 5포, 외3출목은 7포에 해당한다. 이는 주심(柱心)에서부터 최외곽 출목까지 사용한 모든 첨차의 숫자를 지칭한다. 간혹 하나의 출목에 3개의 첨차를 쌓아 올린 건물도 있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과 같이 주심에만 3종류의 첨차를 사용한 경우도 있고, 고창 선운사 대웅전과 같이 주심에 더해 1출목까지 3종류의 첨차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다포 건축에 비해 훨씬 많은 첨차를 설치했기 때문에 외관이 화려한 모습이다. 이는 시기적인 특징으로 보이며 대부분 17세기에 건립한 건축물에서 많이 발견된다.
18세기 중반부터는 주심 첨차 대신에 주장 첨차(柱長簷次)를 사용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주장 첨차는 왼쪽과 오른쪽 폭이 좁은 첨차 대신에 건물의 1칸을 모두 건너지른 판재를 말한다. 기존에는 첨차를 설치하고 양옆에 벽체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모두 판벽으로 꾸미는 방식이다. 공주 마곡사 대광명전, 경복궁 근정전, 계룡산 중악단 등에서 이와 같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판벽으로 만들었지만 단청으로 주심 첨차의 모습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눈여겨 봐야 확인이 가능하다. 주장 첨차와 같이 벽체를 판벽으로 꾸미는 것은 시대적인 특징으로 보이며, 이런 경향은 다포 건축뿐만 아니라 익공 건축에서도 확인된다.
다포의 보 방향으로는 살미 외에 상부에 보머리가 노출된 경우가 있다. 고려 말 · 조선 초에 건립된 다포 건축은 직접 굵은 보머리를 외부로 노출한다거나, 비록 실제 보머리가 노출되지 않더라도 살미를 보머리 형태로 가공해서 이를 대신한다. 보머리의 형상은 크게 3번에 걸쳐 빗잘라 깎아 냈다는 의미로 ‘삼분두(三分頭)’라고 부른다. 매우 굵은 보머리가 외부로 돌출되기 때문에 강한 인상을 주는 부재다. 비록 보머리 형태는 아니지만 살미의 끝단을 삼분두 형태로 가공한 경우도 있다. 이 역시 고식의 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다포 건축의 살미는 시대에 따라 형태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살미에서 바깥쪽으로 최외단에 조각한 부분을 ‘쇠서’라고 한다. 시기적으로 오래된 다포 건축에서는 쇠서의 끝단을 경사지면서 아래로 곧게 뻗도록 조각했다. 이는 ‘하앙’이라는 부재가 사용되었던 옛 건축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 쇠서의 끝단은 상부로 둥그렇게 말아 올리는 방식으로 모양이 변경되었다. 이때 전자의 것을 수서형, 후자의 것을 앙서형이라고 부른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쇠서 상부 또는 하부에 작은 꽃봉오리가 조각되기 시작하더니, 18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쇠서 상부에 활짝 만개한 꽃이 조각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18세기 중엽 이후로 쇠서의 형식은 일정한 법식을 갖게 되었다. 하부에서부터 앙서형의 살미를 몇 단 겹쳐 올라간 다음, 익공형의 살미를 놓고, 최종적으로 구름 모양 또는 봉황 머리 모양의 부재를 얹어서 이것으로 외목도리를 지지하는 방식이다. 이때 앙서형의 부재를 제공(齊工), 익공형의 부재를 익공(翼工), 구름 모양이나 봉황 머리 모양의 부재를 운공(雲工)이라고 부른다.
다포 건축의 내부 최외곽 출목 상부에는 벽체가 만들어진다. 이를 포벽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조형 역시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18세기 중엽 이전의 건축물은 이곳에 화반을 설치하고 좌우로 벽체를 만들어서 비교적 단순하게 마감한다. 하지만 18세기 중엽 이후로는 내부에도 벽체 대신에 판벽을 설치하고, 화반 대신에 하부의 살미와 연달아 구름 모양의 부재를 몇 단 쌓아 올려 매우 화려하게 조성한다. 이들 부재를 두공(頭工)이라고 하고, 최상단의 부재는 운공이라고 칭했다. 내부에 화려한 두공을 설치하는 것에 더해 출목을 많이 늘리는 건축도 건립되기 시작했다.
다포 건축의 경우에 출목은 외부로 23출목 정도를 형성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내부는 외부 출목과 같거나 혹은 1출목을 더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18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외부 출목보다 23출목을 더하는 건축물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부안 내소사 대웅전, 논산 쌍계사 대웅전,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대구 동화사 대웅전 등이 다포 건축의 가장 화려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