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0년(공양왕 2)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품질(品秩)은 6품이었다. 좌사경(左司經)과 우사경(右司經)이 있으며, 정원은 각 1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해에 징원당(澄源堂)이 두어지면서 징원당 좌우사경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1392년(태조 1) 관제를 새로 정할 때 세자 관속(官屬)의 정6품직으로 있다가 성종(成宗) 때 경연(經筵)의 정7품직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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