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창(淳昌). ‘설지충(薛之忠)’으로도 표기된다. 아버지는 충렬왕(忠烈王) 때 첨의참리(僉議參理)를 지낸 설공검(薛公儉)이다.
1279년(충렬왕 5) 독로화(禿魯花: 볼모)로서 원나라에 보내졌으며, 얼마 뒤 귀국하여 낭장(郎將)이 되었다. 1286년에도 독로화로서 원나라에 머물다가 왔으며, 그 뒤 벼슬이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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