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문취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중랑장, 감찰사승, 충현교위관군총파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90년(충렬왕 16)
주요 관직
중랑장|감찰사승|충현교위관군총파
관련 사건
합단의 침입
목차
정의
고려후기 중랑장, 감찰사승, 충현교위관군총파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73년(원종 14) 낭장(郎將)으로 있으면서 하정사(賀正使)의 부사(副使)로 원나라에 사행(使行)하였다. 그 뒤 중랑장(中郎將)에 올랐으며, 1280년(충렬왕 6)에는 제2차 일본정벌에 참여하여 원나라로부터 충현교위관군총파(忠顯校尉管軍摠把)에 제수되었다.

감찰사승(監察司丞)을 거쳐 장군이 되었고, 1290년 합단(哈丹: 원나라의 반란군)의 침입을 방어하다가 죽전(竹田)에서 전사하였다. 1292년에 여문취의 아들과 사위를 등급을 초월하여 서용(敍用: 복권된 사람과 첩의 자손 따위를 각각 일정한 품급으로 한정하여 임용하던 일)하는 조처가 취하여졌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집필자
이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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