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9년(숙종 4) 형부상서(刑部尙書)가 되었고, 1101년 추밀원사(樞密院使)로서 서북면병마사 지중군병마사사(西北面兵馬使知中軍兵馬使事)를 겸했으며 이 해 판삼사사(判三司事)·상서좌복야 겸 태자빈객(尙書左僕射兼太子賓客)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다음 해 판동북면병마사 겸 행영병마사(判東北面兵馬事兼行營兵馬使), 1103년 참지정사(參知政事)·판상서호부사(判尙書戶部事)를 지냈다. 이듬해 왕이 남경(南京: 지금의 서울 지역)으로 행차하였을 때 평장사(平章事) 이오(李䫨) 등과 함께 호종(扈從)하였다. 1105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치사(致仕)하였다. 1115년(예종 10) 왕이 친히 국로(國老)들을 불러 합문(閤門)에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때 초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