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목왕후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전기 제10대 정종의 제3왕비.
이칭
이칭
창성궁주(昌盛宮主), 도애(悼哀)
인물/전통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부여
정의
고려전기 제10대 정종의 제3왕비.
개설

부여사람으로 공부시랑(工部侍郞) 이품언(李稟焉)의 딸이며, 덕종의 제4비 이씨(李氏)와 자매간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처음에 호를 창성궁주(昌盛宮主)라고 하였다. 정종과의 사이에 공주를 낳았으나, 1057년(문종 11)에 죽었으므로 시호를 도애(悼哀)라고 하였다. 이품언의 관직이 정4품직에 불과하고 관계 기록도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두드러진 정치활동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두 딸이 연이어 왕의 후비가 되었으며 용목왕후는 왕후의 책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가문의 배경을 가졌거나, 혹은 자매의 미모가 뛰어나 왕실과 밀착될 수 있는 조건이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시대의 후비』(정용숙, 민음사, 1992)
집필자
정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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