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출신.
일찍이 만주로 건너가 봉천성(奉天省) 무송현(撫松縣)에서 조직된 흥업단(興業團)에 가담하여 각지를 돌아다니며 교포들에게 애국심과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다가, 1922년 이상룡(李相龍)이 설립한 길남장(吉南莊)이 있는 엽전(燁甸)으로 옮겼다.
1923년 다시 하얼빈으로 옮겨 활동하던 중 1924년 4월 8일 십팔도가(十八道街)에서 참의부(參議府)가 밀파한 김만수(金萬秀)를 만나 일본영사 구니요시[國吉精保]와 형사부장 마쓰지마[松島]의 암살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암살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일본경찰과 중국경찰의 연합부대 200여명에게 숙소가 포위되어 15시간의 총격전 끝에 일본영사 구니요시를 비롯하여 10여명을 사살하고 자결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