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윤문옥(尹文玉)이다. 윤관(尹瓘)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감찰어사 윤순(尹純)이고, 어머니는 홍주이씨(洪州李氏)로 예빈소윤 이균(李昀)의 딸이다. 아들로는 윤안적(尹安𥡦)·윤암(尹諳)·윤안숙(尹安淑, 尹安肅)·윤안비(尹安庇)·윤계종(尹繼宗) 등이 있다.
1278년(충렬왕 4)에 내시(內侍)·첨사부녹사(詹事府錄事)로서 정방비칙치(政房必闍赤)에 임명되어 전주(銓注: 인사행정)를 관장하였다. 1296년 9월에는 좌승지로 있으면서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주관하였고, 다음해 12월 밀직학사로 승진하여 재추의 반열에 올랐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한 후 5월 곧 홍문관학사·의조상서(儀曹尙書)에 임명되었으며, 7월 밀직부사·성균감대사성(成均監大司成)·수문전학사(修文殿學士)로 옮겼다. 그러나 8월 충렬왕이 복위하자 외직으로 나가 서북면도지휘사(西北面都指揮使)가 되었다. 다음해 2월 한희유무고사건(韓希愈誣告事件)을 일으킨 인후(印侯)가 원나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
1307년(충렬 33) 3월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무종을 옹립한 공으로 실권을 장악한 뒤에야 비로소 복직되어 밀직부사가 되었다. 그 뒤 1321년(충숙왕 8)에 수첨의찬성사(守僉議贊成事)로 치사하였으며, 다시 정승치사(政丞致仕)가 가직(加職)되고 영평군(鈴平君)에 봉하여졌으며, 1329년(충숙 16) 7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현(文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