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이다. 1211년(희종 7) 11월 금나라에 하정사(賀正使)로 보내졌으나 길이 막혀 돌아온 적이 있으며, 1212년(강종 1) 7월 호부시랑(戶部侍郎)으로서 금나라의 만추절(萬秋節)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1216년(고종 3) 거란이 침입해오자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5군이 편성되면서 형부시랑(刑部侍郎)으로서 좌군병마부사로 임명되었다가, 다음 해 거란에 패배하여 5군이 재편성될 때에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거란의 침입이 계속됨에 따라 같은 해에 5군 및 가발병(加發兵)을 혁파하고 3군을 설치할 때 중군지병마사(中軍知兵馬事)가 되었다. 최종 관직은 위위경(衛尉卿)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