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곤 ()

기범연의 / 이원곤
기범연의 / 이원곤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기범연의』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황중(黃中)
정허와(靜虛窩)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76년(영조 52)
사망 연도
1845년(헌종 11)
본관
고부(古阜)
출생지
미상
정의
조선 후기에, 『기범연의』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고부(古阜). 자는 황중(黃中), 호는 정허와(靜虛窩). 이동영(李東榮)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경전을 탐독하였으며 특히 정주학(程朱學)에 전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사부(詞賦)·전표(箋表)·논책(論策)·시율(詩律) 등에 뛰어났고, 1803년(순조 3)에 증광진사(增廣進士)에 합격한 뒤 학문 연구에 전심하는 한편 후학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향학(鄕學)에서 관찰사에게 두 번이나 천거하였으나 채용되지 아니하였다.

일찍이, 심성이기(心性理氣)의 분별과 유석왕패(儒釋王覇)의 도리를 논변하여 기록하고, 『의례』·『가례』의 문목과 향음례도(鄕飮禮圖)를 해설하였으며, 경전을 분류하여 『기범연의(箕範衍義)』 4권을 지었다.

또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의 병환 때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드렸으며, 임종 때 당질(堂姪)을 불러 “반족(班族)이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사환(仕宦)과 세덕(世德)과 조행(操行)이다. 사자(士子)로서는 조행을 삼가는 데 힘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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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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