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수사공 참지정사(守司空參知政事)를 지낸 이궤(李軌)의 아버지이다.
1056년(문종 10) 9월 왕이 지방수령과 향리들의 부지런함과 태만함, 청렴결백함과 부정·부패 따위의 근무자세와 일반백성들의 빈부와 고락을 살피기 위하여 사신을 보내어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 때 겸시어사 형부원외랑(兼侍御史刑部員外郎)으로서 산동남충경상주 삼도무문사(山東南忠慶尙州三道撫問使)에 임명되었다.
1059년 3월 기거주(起居注)로 있으면서 감찰어사 이병양(李秉陽)과 함께 죄수를 조사하여 그 중 죄가 가벼운 63명을 석방시켰다.
1061년 11월 우유덕(右諭德)이 되었고, 1063년 2월 형부시랑 우간의대부(刑部侍郎右諫議大夫)로서 서북면춘하번병마부사(西北面春夏番兵馬副使)로 나아갔다. 뒤에 관직이 예부시랑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