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년(신종 5) 안유부(安有孚)와 함께 좌우승선(左右承宣)에 임명되었고, 고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1221년 몽고사신들이 온다는 동북면병마사의 보고에 조정의 의론이 분분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사천감(司天監) 박강재(朴剛材)와 함께 직접 대묘에 나아가 점을 쳤다.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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