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림 고택 ( )

주생활
유적
문화재
19세기에 건립된, 조선시대 내관 김일준의 옛집.
이칭
이칭
청도 임당리 내관가, 청도 임당리 김씨 고택, 청도 임당동 내관가
유적/건물
건축 양식
튼ㅁ자집
건립 시기
19세기
규모
2필지/3,708㎡
소재지
경상북도 청도군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민속문화재(2005년 1월 31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청도군
내용 요약

청도 운림 고택(淸道 雲林 古宅)은 19세기에 건립된 조선시대의 내관이었던 김일준의 옛집이다. 안채 영역이 두드러지게 폐쇄적인 것을 비롯하여 일반 상류층의 주거와 다른, 내관가 특유의 주거 건축 문화와 관련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사 · 문화사적 의의가 크다.

정의
19세기에 건립된, 조선시대 내관 김일준의 옛집.
건립 경위

청도 운림 고택(淸道 雲林 古宅)은 조선 말의 주45이었던 정3품의 주13 김일준(金馹俊, 1863~1945)의 집이다. 김일준의 가문은 성이 다른 양자를 들여 대를 이은 내관가(內官家)였고, 시조부터 김일준까지 십육 주14가 이어졌으며, 이 세 이하 전 세대에 궁중 내관으로 근무하였다. 주16는 1500년대에 이 지역에 들어왔다는 주15이 있다. 각 세대의 조상이 주로 청도 주변에 본적을 둔 집안과 혼인한 것으로 보아 실제로 일찍부터 청도에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현존 건물에서 ‘康熙 二十五年’(강희 25년, 1686)이라는 주17이 있는 주1 주2가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현재 집터를 오래 전부터 썼음을 알 수 있으나 건물 구조는 19세기의 기법으로 추정된다.

변천

1908년(융희 2) 내시부(內侍府)가 폐지되면서 김일준의 다음 세대인 17세 이후의 후손들은 주18에서의 활동에 주력하였다. 운림 고택과 별도로 궁중의 현직에 종사할 때 거처한 집이 서울 돈암동과 종로에 있었으나 1950년대 이후 매각했다고 한다. 큰사랑채 북쪽에 별도의 광이 있었고, 사당 남쪽에는 주19가 있었으나 1988년 조사 당시 이미 없어졌다고 한다. 또한 중사랑방 2칸 중 왼쪽 1칸은 원래 마루방이었으나 온돌방으로 합쳤다 한다.

1996년, 2008년 등의 시기에 보수가 이루어졌다.

형태와 특징

이 고택은 임당리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운문산 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은 시루봉 서쪽 기슭에 임당리가 있으며 마을 서쪽으로 동창천이 흐른다. 주20를 따라 남서향한 주21를 지나면, 대문 안의 사랑 마당 왼쪽에 큰사랑채가 있고 우측에는 중사랑채와 그 뒤의 주22, 작은 주42, 큰 광채가 튼ㅁ자로 안마당을 둘러싼다. 중사랑채 우측에는 담장을 두른 주23 영역이 있다.

이 고택은 큰사랑채의 위치 선정과 안채 영역의 두드러진 폐쇄성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사랑 주24 북쪽에서 남향하고 있는 큰사랑채에서 집안의 웃어른인 ‘상노인’은 대문채와 중사랑채, 안채를 두루 살필 수 있다. 안채와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주25은 중사랑채의 일부이므로 중사랑채와 큰사랑채에서 안마당 출입을 인지할 수 있다. 튼ㅁ자로 주26을 둘러싼 건물들 사이와 안채 둘레에 빈틈없이 담을 쌓았고, 일반적인 경상북도의 상류층 주거에서 안채와 바깥 사이의 출입이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흔히 만드는 주27은 전혀 없다.

안채가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또한 특징적이다. 안채를 큰광채 위치에 지으면 대문채나 중사랑채처럼 남서향시킬 수 있었으나 중사랑채 우측 뒤편에 북서향으로 만들었다. 이는 내관직을 대대로 지낸 가문이므로 대궐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지은 것이라 생각된다.

대문채는 5칸 규모의 우진각지붕 건물인데 가운데 칸이 솟을대문이고 좌측의 마구간, 우측의 주28으로 구성된다.

큰사랑채는 대사랑채라고도 하며 전면 4칸 측면 2칸의 5량가 팔작지붕 집이다. 왼쪽 절반은 사랑 대청, 오른쪽에는 주35이 있고 앞뒤에 주29를 붙였다. 주30주31주32을 썼다. 사랑방 우측에는 주33, 후면에 반침(半寢)을 만들었고, 사랑방의 주36우물천장을 설치한 것은 독특한 주34이다.

중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집인데, 제일 왼쪽에 중문이 있고 그 우측으로는 마루 2칸과 중사랑방 2칸이 앞뒤로 놓인다. 그리고 제일 우측에는 방 1칸과 마루 1칸이 앞뒤로 놓였는데, 안마당 쪽으로만 열려 있다. 좌우의 건물 모서리와 대청 좌측 앞에는 주37이 연결되는데, 대청 앞과 토담 사이는 눈높이에 구멍을 낸 주3을 설치하여 드나드는 사람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중사랑방은 전면과 우측의 마루에 모두 통하고 뒤에는 안마당으로 통하는 주4 주5주6가 있는데, 안마당 쪽으로 ㄴ자형 판벽을 세워 손님의 시선을 막았다.

안채는 정면 5.5칸, 측면 2칸의 3량가 맞배지붕 집인데, 좌측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이 있다. 건물 전면과 대청의 후면 2칸은 주38으로 꾸몄고 대청 대들보 위에는 원형 대공을 올렸다. 부엌과 안방 사이에는 반 칸 폭의 다락이 있고, 안방과 대청 앞에는 툇마루, 건넌방 앞에는 주39가 붙어 있다. 안채 건넌방은 중사랑채 우측 후면의 마루와 사당채 북측 협문에 인접해 있다.

큰 광채는 정면 5.5칸, 측면 2칸의 5량가 홑처마 맞배지붕 집이다. 안마당의 북동쪽을 막고 있다. 실내 우측 칸 후면 쪽에는 큰 주40가 있고, 그 다음 4칸에 큰 수장 공간이 이어진다. 제일 좌측엔 반 칸 규모로 주7을 달아 내고 안채 영역의 화장실인 주41을 설치하였다.

작은 광채는 안채를 마주보는 안마당 북서쪽을 막고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1칸의 3량가 홑처마 맞배지붕집이다. 수장 공간 옆에 별도로 주8 1칸을 마련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전퇴칸을 둔 3량가 홑처마 맞배지붕집이다. 변형된 첨차(檐遮)주9을 겸하는 도리장혀가 보아지와 직교하여 주두 아래 주10되고 주43 위에 주44 머리와 주11가 올라간다. 중사랑채 남쪽의 토담 두른 영역 안에 서향해 있고, 서쪽과 북쪽 담에 작은 협문을 설치하여 출입한다.

의의 및 평가

일반적인 상류층 주거와 다른, 내관가 특유의 주거 건축 문화와 관련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사 · 문화사적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우원 편, 『경상북도 문화재 도록』 3(동해문화사, 1995)
전국건축문화자산 자료조사 행사위원회, 『전국건축문화자산 8권: 대구 경북편』(’99 건축문화의해 조직위원회, 1999)
문화재청, 『한국의 전통 가옥 기록화 보고서』 42(문화재청, 2013)

논문

김일진·이호열, 「청도 임당동 내관가에 관한 연구」(『대한건축학회논문집』 4-6, 대한건축학회, 1988)
주석
주1

암키와가 쭉 이어져 형성된 기왓골의 끝에 드림새를 붙여 만든 기와. 우리말샘

주2

지붕의 마루 끝에 세우는, 와당이 달린 암막새. 우리말샘

주3

판판하고 넓게 켠 나뭇조각. 우리말샘

주4

외짝으로 된 여닫이. 우리말샘

주5

울거미를 짜고 그 안에 가는 살을 가로세로로 좁게 댄 문. 우리말샘

주6

평주(平柱) 밖으로 덧달아 낸 마루. 마루의 한쪽은 평주(平柱)에 의존하지만 바깥쪽은 따로 기단에 짧은 동바리를 받쳐 마루를 놓는다. 우리말샘

주7

벽이나 물림간에 기대어 만든 지붕. 우리말샘

주8

디딜방아로 곡식을 찧거나 빻는 집. 우리말샘

주9

기둥과 기둥 사이, 또는 문이나 창의 아래나 위로 가로지르는 나무. 문짝의 아래위 틀과 나란하게 놓는다. 우리말샘

주10

일정한 형태로 얼개를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든 물건. 우리말샘

주11

기둥의 중심 위에서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도리. 우리말샘

주13

조선 시대에 둔, 정삼품 문관의 품계. 고종 2년(1865)부터 종친과 의빈(儀賓)의 품계로도 썼다. 우리말샘

주14

((한자어 수 뒤에 쓰여)) 가계나 지위의 차례, 또는 왕조의 임금 순위를 나타내는 단위. 우리말샘

주15

이전에 있던 이론이나 이야기. 우리말샘

주16

한 겨레나 가계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 우리말샘

주17

쇠붙이와 돌, 살림살이에 쓰는 그릇 따위에 새겨 놓은 글. 우리말샘

주18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우리말샘

주19

대문간 곁에 있는 집채. 우리말샘

주20

땅의 생긴 모양이나 형세. 우리말샘

주21

대문이 있는 집채. 우리말샘

주22

한 집 안에 안팎 두 채 이상의 집이 있을 때, 안에 있는 집채. 우리말샘

주23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은 집. 우리말샘

주24

사랑채 앞에 있는 마당. 우리말샘

주25

중문이 있는 곳. 우리말샘

주26

집 안의 안채 앞에 있는 마당. 우리말샘

주27

삼문(三門) 가운데 좌우에 달린 작은 문. 동협문, 서협문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8

대문간에 붙어 있는 방. 우리말샘

주29

툇간에 놓은 마루. 우리말샘

주30

한옥에서, 몸채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큰 마루. 우리말샘

주31

둥근 모양. 우리말샘

주32

들보 위에 세워서 마룻보를 받치는 짧은 기둥. 한자를 빌려 ‘大共/臺工/大工’으로 적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33

벽을 뚫어 작은 문을 내고 그 안에 물건을 넣어 두게 만든 장(欌). 우리말샘

주34

비슷하게 꾸밈. 또는 그런 차림새. 우리말샘

주35

집안의 웃어른이 거처하는 사랑. 우리말샘

주36

안둘렛간 밖에다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칸살. 우리말샘

주37

흙으로 쌓아 만든 담. 우리말샘

주38

접시받침으로 이루어진 집. 우리말샘

주39

평주(平柱) 밖으로 덧달아 낸 마루. 마루의 한쪽은 평주(平柱)에 의존하지만 바깥쪽은 따로 기단에 짧은 동바리를 받쳐 마루를 놓는다. 우리말샘

주40

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나무로 궤짝같이 만드는데, 네 기둥과 짧은 발이 있으며 뚜껑의 절반 앞쪽이 문이 된다. 우리말샘

주41

안채에 딸린 부녀자용 뒷간. 우리말샘

주42

안채에서 따로 떨어진, 광이 있는 집채. 우리말샘

주43

기둥 위를 장식하며 공포를 받치는 넓적하고 네모진 나무. 우리말샘

주44

툇기둥과 안기둥에 얹는 짧은 보. 우리말샘

주45

조선 시대에, 내시부에 속하여 임금의 시중을 들거나 숙직 따위의 일을 맡아보던 남자. 모두 거세된 사람이었다. 우리말샘

집필자
이우종(영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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