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량지정

  • 역사
  • 제도
  • 남북국
남북국시대, 신라 경덕왕 대를 전후하여 왕도(王都)를 둘러싼 대성군(大城郡) 및 상성군(商城郡)에 설치되었던 6개의 군영(軍營), 즉 육기정(六畿停) 중 하나.
이칭
  • 이칭막야정, 북아량
제도/법령·제도
  • 시행 시기신라시대
  • 주관 부서육기정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박성현 (계명대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08월 1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관아량지정은 남북국시대, 신라 경덕왕 대를 전후하여 왕도(王都)를 둘러싼 대성군(大城郡) 및 상성군(商城郡)에 설치되었던 6개의 군영(軍營), 즉 육기정(六畿停) 중 하나이다. 북아량(北阿良)이라고도 하며, 757년(경덕왕 16)에 막야정(莫耶停)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대체로 경주 동북의 천북면이나 서북의 현곡면으로 비정된다.

정의

남북국시대, 신라 경덕왕 대를 전후하여 왕도(王都)를 둘러싼 대성군(大城郡) 및 상성군(商城郡)에 설치되었던 6개의 군영(軍營), 즉 육기정(六畿停) 중 하나.

내용

남북국시대, 신라 경덕왕 대를 전후하여 왕도(王都)를 둘러싼 대성군(大城郡) 및 상성군(商城郡)에 설치되어 있었던 6개의 군영(軍營), 즉 육기정(六畿停) 중 하나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 양주(良州) 상성군조에는 막야정은 본래 관아량지정인데, 경덕왕 때 관아량지정을 막야정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고려 때 경주에 합쳐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관아량지정은 북아량이라고도 한다.

관아량지정, 즉 막야정은 고려 때 경주에 합쳐졌으므로 안강(안강읍, 강동면)을 제외한 경주 경내에서 위치를 찾아보면, 북아량이라는 이칭으로 보아 북쪽 방면에 있었을 것이다. 또, 육기정의 나열 순서상 서북보다는 동북 방면일 가능성이 크다. 그랬을 때 경주 동북에 있는 기존 천북면(지금의 경주시 황성동, 동천동, 용강동, 북군동, 천북면) 지역에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군영의 소재지를 성으로 본다면 강동면에 있는 북형산성이나 양동리성에 비정하기도 한다. 또한 교통로에 주목하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에 역(驛)이 없었지만 지리지에 보이는 간문역(艮門驛, 동북)이 천북면 동산리 정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대체로 이곳을 통과하여 경주 동북의 해안 지역으로 가는 도로를 통제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관아량지정이 일반 군현의 현(縣)과 같이 일정한 관할 구역이 있었다면 기존 천북면으로 볼 수 있으며, 이것은 왕경(王京) 6부 중 습비부(習比部)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원전

  • - 『삼국사기』

  • 단행본

  • - 정구복 외,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4』-주석편(하)(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2)

  • 논문

  • - 박성현, 「신라 왕경 6부의 경계에 대한 연구」(『대구사학』 134, 대구사학회, 2019)

  • - 정요근, 「통일신라시기의 간선교통로: 왕경과 주치 · 소경 간 연결을 중심으로」(『한국고대사연구』 63, 한국고대사학회, 2011)

  • - 이문기, 「신라 경덕왕대에 재편된 왕도 방어 군사조직과 성곽의 활용」(『신라문화』 34,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09)

  • - 전덕재, 「신라 6부 명칭의 어의와 그 위치」(『경주문화연구』 1, 경주대학교 문화재연구소, 1998)

  • - 민덕식, 「신라왕경의 방비에 관한 고찰」(『사학연구』 39, 한국사학회, 1987)

주석

  • 주1

    : 신라 때에, 구주(九州) 가운데 지금의 양산에 둔 행정 구역. 문무왕 5년(665)에 상주와 하주의 땅을 개편하여 삽량주라고 하던 것을 경덕왕 때 고친 것으로 김해 소경(金海小京)과 12군(郡), 33현(縣)이 속하였다. 우리말샘

  • 주2

    : 어떤 미상(未詳)의 물체에 대하여 그와 유사한 다른 물체와 비교하여 그 성질을 정함. 우리말샘

  • 주3

    : 신라 때에 둔, 육기정의 하나. 지금의 경주 부근에 둔 행정 구역으로, 경덕왕 때 관아량지정을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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