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국상 당일에 조직되어 장례 뒤 혼전(魂殿 : 왕이나 왕비의 국상 뒤에 종묘에 配位할 때까지 신위를 모시던 사당)에 반우(返虞 : 장사 지낸 뒤 神主를 집으로 모셔옴.)해 우제가 끝날 때까지 약 5개월간 존속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상·장례에 따르는 모든 의전·재정·시설·문한(文翰) 등의 업무를 총괄하였다. 단, 빈전(殯殿)과 산릉(山陵)에 관한 일만은 별도의 도감이 설치되어 담당하였다.
이 기구가 처음 설치된 것은 1365년(공민왕 14) 공민왕비였던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상사 때이다. 이 때 빈전도감·조묘도감(造墓都監)·불재도감(佛齋都監)과 함께 설치되어 4도감으로 지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396년(태조 5)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의 상에 4도감의 하나로서 설치되었고, 그 아래 상복·옥책(玉冊)·관곽(棺槨) 등을 담당하는 13소(所)가 부설되었다. 1419년(세종 1) 정종의 국장 때부터는 불재도감이 폐지되고 순전한 유교 의식으로 행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의 정제에 의하면 보통 도청(都廳)과 1·2·3방(房)으로 조직되었다. 여기에 분전설사(分典設司)·분장흥고(分長興庫)·지석소(誌石所)·우주소(虞主所)·별공작소(別工作所) 등이 부설되어 장의 업무를 분담하였다.
도청은 의전의 집행과 전체업무의 지휘, 1방은 상여·주렴(朱簾)·평상(平床) 등의 제작, 2방은 각종 의장(儀仗)·기명(器皿)의 준비, 3방은 애책(哀冊)·인문(印文)·만장(輓章) 등 문한의 일을 맡았다. 분전설사·.분장흥고 등은 각각 시설·재정 등의 업무를 취급하였다.
소속 인원으로는 총호사(摠護使)로 지칭된 도제조 1인, 예조판서·호조판서·선공감제조 등으로 임명하는 제조 4인, 3·4품의 도청(都廳) 2인, 4∼6품의 낭청 6인, 감조관(監照官) 6인 등의 정규 관원이 소속되었다. 이외에도 독책관(讀冊官)·독보관(讀寶官)·상시책보관(上諡冊寶官) 등 50여인의 유사(有事)로 구성되어 있었다.
왕후의 상일 경우에는 독책관 이하에 고위 내시들이 임명되었다. 왕세자·세자빈 등 중요 왕족의 장례에는 예장도감(禮葬都監)이 설치되었는데 그 규례는 거의 국장도감에 준하였다. 국장의 시말, 각종 예규, 도감에서의 업무와 행사 내용 등은 일일이 기록되어 기타 자료들과 함께 의궤(儀軌)로 편찬, 보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