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방향으로 긴 그림이나 글씨가 쓰여진 종이나 비단의 뒷면을 배접하고 가장자리 네 면을 비단 등의 직물로 이어 붙이고 꾸며서, 좌우 끝에 축(軸)을 달아 가로로 말았다 펼칠 수 있게 만든 장황 형태이다. 한자어로는 권축장(卷軸裝) · 축장(軸裝) · 권축(卷軸)이라고 한다. 여기서 축은 좌우 끝 부분에 달아 말았다 펼쳤다 할 수 있게 만든 나무봉을 말한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발전에 따라 불경을 필사하여 두루마리로 장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두루마리 형태의 문화유산으로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발견된 751년(경덕왕 10)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있다. 또 754년에 제작된 신라의 백지묵사경(白紙墨寫經)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1007년(목종 10)에 간행된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을 비롯하여 11세기에 간행된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12세기에 간행되고 필사된 여러 종류의 불경류가 대부분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을 중심으로 공적인 문서의 갖춤을 위하여 두루마리로 장황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공신 교서(功臣敎書), 회맹문(會盟文), 교명(敎命) 등이 있으며 왕실에서 제작하는 만큼 고급 재료들을 사용하였다. 『책례도감의궤(冊禮都監儀軌)』,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등에는 교명에 사용된 재료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모습이 도설(圖說)로 표현되어 있다. 현전하는 자료로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의 왕세자빈 책봉 교명, 영조가 사도세자를 왕세자에 책봉한 교명 등이 전하고 있어 화려한 왕실의 교명 장황 형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교명의 두루마리 장황은 화려한 색채와 문양의 비단을 사용하였고, 오색다회의 끈과 옥으로 만든 축두 등을 사용하고 있다.
공신 교서의 장황은 현전하는 것으로 임진왜란 때 광해군의 항전을 도운 공로에 대한 「이성윤 위성공신 교서(李誠胤衛聖功臣敎書)」,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운 이삼에게 수여한 「이삼 양무공신 교서(李森揚武功臣敎書)」 등이 남아 있다. 이들 공신 교서는 화려한 교명의 장황과는 달리 무늬 없는 황색, 남색 비단을 기본으로 하여 단정하고, 축두 역시 나무로 깎아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두루마리는 장황 형식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형태로 옆으로(가로로) 긴 그림이나 글씨를 말거나 펼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두루마리는 이동하거나 휴대하기 편리한 형태이며, 완전히 둥글게 만 상태의 두루마리 한 점은 차지하는 공간의 비율이 적어, 보관이 용이하며, 말아서 보관할 경우 표면이 직접 공기에 닿지 않아 서화면의 산화를 예방할 수 있어 보존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가는 축을 기준으로 마는 데서 오는 꺾임, 안료 박락 등의 물리적인 손상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