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천황산(天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현오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나,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내용
1002년(목종 5)에는 대은(大隱)이 크게 중수(重修)하였으며, 1468년(세조 14)에 낙은(樂隱)이 중창(重創)하여 대찰(大刹)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용성지(龍城志)』에 의하면 당시의 불당은 산을 메웠고, 승려는 2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때의 당우(堂宇)로는 법당 · 정루(正樓) · 만월당(萬月堂) · 승당 · 연화당(蓮華堂) · 삼광전(三光殿) · 문수전(文殊殿) · 상실(上室) · 명월당(明月堂) 등이 있었고, 부속 암자(庵子)로는 남암(南庵) · 대은암(大隱庵) · 영당(影堂) · 낙은암(樂隱庵) 등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의 대상리 일대가 모두 절의 소유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어 약 70여 년 동안 폐사(廢寺)로 남아 있다가 1664년(현종 5)에 설제(雪霽)가 중건(重建)하였다. 그 뒤 1804년(순조 4)에 현일(玄一)이 크게 중수하였는데, 과거 전성기의 면모는 갖추지 못하였으나, 대웅전 · 시왕전 · 산신각 · 칠성각 · 선당(禪堂) · 회승당 등 많은 당우를 갖추었다.
그때 건립한 당우들은 9·28 서울 수복 이후 공비(共匪) 토벌 때에 작전상의 이유로 소각하였으며, 그 뒤 주지 정동(瀞東)의 노력으로 1968년에 대웅전 · 승당 · 산신각 · 요사채 등을 중건하였고, 1990년대 초에는 보광전 오른쪽에 요사를 지었으며, 예전의 칠성각을 요사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 절터인 귀정사지가 1985년 전라북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대은과 낙은의 부도 2기가 전한다.
참고문헌
원전
- 『용성지(龍城志)』
단행본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 상(上)(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 이상구, 박찬모, 김진욱, 박길희, 심미안, 『지리산권 불교설화』 (2009)
- 『고도남원(古都南原)의 얼』 (남원군, 1982)
- 『전통사찰총서』 9 (사찰문화연구원, 1997)
주석
-
주1
: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치다. 우리말샘
-
주2
: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짓다. 우리말샘
-
주3
: 규모가 크거나 이름난 절. 우리말샘
-
주4
: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5
: 큰 절에 딸린 작은 절. 우리말샘
-
주6
: 한 종파의 조사(祖師)나 한 절의 창시자, 또는 덕이 높은 승려의 화상(畫像)을 모신 집. 우리말샘
-
주7
: 폐하여져 승려가 없는 절. 우리말샘
-
주8
: 절이나 왕궁 따위를 보수하거나 고쳐 짓다. 우리말샘
-
주9
: 시왕을 모신 집. 우리말샘
-
주10
: 좌선하는 집. 보통 절 안의 왼쪽에 있다. 우리말샘
-
주11
: 공산당의 유격대. 중국에서, 국민 정부 시대에 공산당의 지도 아래 활동하던 게릴라를 비적(匪賊)이라고 욕하며 부르던 데서 유래한다. 우리말샘
-
주12
: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
주13
: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
주14
: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