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능력을 갖췄으나 억울한 죽음을 당한 명장 남이(南怡, 1441~1468)에 관한 인물전설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청야만집(靑野謾輯)』 · 『대동기문(大東奇聞)』에 남이와 관련한 문헌 자료가 전해지고 있으며, 구전설화(口傳說話)도 전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문헌 자료는 순수 설화라기보다 여러 문집에 실려 있는 남이에 관한 기록을 인용한 것으로 모두 같은 내용이다. 특기할 것은 『연려실기술』 중 『국조기사(國朝記事)』의 자료를 인용한 남이의 혼인 과정은 현재 구전되는 설화와 똑같은데,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는 민간전승(民間傳承)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이 장군 설화」를 정리하면 출생-혼인-입공-죽음의 4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남이의 출생에 대해, 모든 각편에서는 남이가 짐승의 원혼으로부터 환생한 것이라고 한다. 희생된 사람의 몸을 공물로 받던 거대한 지네 또는 뱀이, 사람을 희생시켜 제물로 바치는 폐해를 없애려 했던 어떤 이인(異人)에 의하여 퇴치된 뒤 그 원수를 갚으려고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생한 남이는 어려서부터 비범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자신의 스승 또는 아버지인 이인을 해치려는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원한을 풀었다는 것이다. 혼인에 관한 내용은 구전이나 문헌설화(文獻說話)나 똑같은데, 모두 남이의 비범함을 보여 준다.
남이가 어렸을 때 거리에서 놀다가 어린 종이 보자기에 작은 상자를 싸서 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위에 분을 바른 여자 귀신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남이가 이를 이상히 여기며 그 뒤를 따라갔더니, 그 종과 여자 귀신은 권람(權擥)의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그 집에서 우는 소리가 났다. 남이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주인집 낭자(娘子)가 갑자기 죽었다.”라고 하므로, 남이는 “내가 들어가서 보면 살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 그 집에서는 남이의 말을 허락하지 않다가 한참 뒤에야 허락해 주었다.
남이가 집안에 들어가니 낭자의 가슴을 타고 앉았던 귀신이 달아났다. 그리고 낭자가 일어나 앉았다. 남이가 집안에서 나오니 낭자는 다시 죽었다가, 남이가 들어가자 되살아났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자, 남이는 자기가 본 바를 이야기하고, 약으로 낭자를 치료하였다. 이 일로 남이는 권람의 사위가 되었다.
입공 부분에는 제주도 정벌과 두만강 정벌로 요동(遼東) 700리 땅을 차지하였다는 것이 이야기된다. 제주도를 정벌하였다는 것은 허구이다. 하지만 구비설화(口碑說話)에서는 제주도 정벌 때 남이에게 죽은 제주도 여왕의 원혼이 남이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는 내용의 각편도 더러 있다.
남이에게 쫓겨났던 분을 바른 여자 귀신 또는 제주도 여왕이라는 여자 귀신의 장난으로 인해, 남이가 읊은 시의 글귀 중 ‘미평국(未平國)’이 임금에게 ‘미득국(未得國)’으로 잘못 읽혔고, 이 때문에 남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4단계는 모두 원혼과 관계있는 것들이다. 실제로 남이는 의산위(宜山尉) 남휘(南暉)의 아들이면서 태종의 외손이라는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설화에서는 그와 같은 남이의 신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남이의 죽음을 억울한 것으로 인식해 온 설화 향유층의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문헌에서는 남이의 죽음을 억울한 모함으로 몰아가기보다, 단명(短命) 예언과 같은 정해진 운명론(運命論)을 수용한다. 이에 반해 구비설화에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응보로 죽임을 맞이한다는 불교적 생사관(生死觀)이나 원귀(冤鬼)의 작용이라는 형태로, 남이의 죽음을 억울한 죽음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구비설화의 향유층은 남이를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세계의 횡포로 좌절당하는 민중적 영웅으로 이해하고, 그와 맥락을 같이하는 설화 유형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유형은 인물의 실제 행적과 상관없이 향유층에 의하여 민간 영웅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자료이다. 뒤에 민간신앙(民間信仰)에서 남이는 ‘남이장군신’으로서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져 오기도 한다. 임진왜란 이후 명화적(明火賊)들이 남이 장군제(將軍祭)를 올리며 남이를 숭배하거나, 남이가 마을의 부군당신으로 좌정되기도 했다. 서울 용산구 용문동에는 남이 장군 사당(祠堂)이 있으며, 음력 10월 1일에 이곳에서 남이 장군 사당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