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능력을 가졌으나 억울한 죽음을 당한 명장 남이에 관한 인물전설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청야만집(靑野謾輯)』·『대동기문(大東奇聞)』에 문헌 자료가 전해지고 있으며, 구전설화도 전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문헌 자료는 순수설화라기보다 여러 문집에 소재하여 있는 남이에 관한 기록을 인용한 것으로서, 모두 같은 내용이다. 특기할 것은 『연려실기술』 중 『국조기사(國朝記事)』의 자료를 인용한 남이의 혼인 과정은 현재 구전되는 설화와 같은 것으로 보아, 민간 전승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이장군설화」를 정리하면 출생·혼인·입공·죽음의 4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출생에 대해서는 각 편이 모두 남이는 짐승의 원혼이 환생한 것이라고 한다. 인신공희(人身供犧)를 받는 거대한 지네 또는 뱀이 그 폐해를 없애려 한 어느 이인에 의하여 퇴치된 뒤 원수를 갚으려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비범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몇 차례 스승 또는 아버지인 이인을 해치려는 시도 끝에 원한이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혼인에 관한 내용은 구전이나 문헌설화나 같은데, 모두 남이의 비범성을 보여 준다.
남이가 어렸을 때 거리에서 놀다가 어린 종이 보자기에 작은 상자를 싸 가지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위에 분을 바른 여자 귀신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그 뒤를 따라갔더니 권람(權擥)의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그 집에서 우는 소리가 나기에 까닭을 물었더니 “주인집 낭자가 갑자기 죽었다.”고 하므로, 남이가 “내가 들어가서 보면 살릴 수 있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다가 한참 뒤에야 허락해 주었다.
남이가 들어가니 낭자의 가슴을 타고 앉았던 귀신이 곧 달아나고 낭자가 일어나 앉았다. 남이가 나오니 낭자는 다시 죽었다가 남이가 들어가자 되살아났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자 남이는 자기가 본 바를 이야기하고, 약으로 치료하였다. 이 일로 남이는 권람의 사위가 되었다.
입공 부분에는 제주도 정벌과 두만강 정벌로 요동 700리 땅을 차지하였다는 것이 이야기된다. 제주도를 정벌하였다는 것은 허구이지만, 설화에서는 제주도 정벌 때 남이에게 죽은 제주도 여왕의 원혼이 남이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이라는 각 편도 더러 있다.
남이의 죽음은, 그가 읊은 시의 글귀가 그에게 쫓겨간 분을 바른 여귀 또는 제주도 여왕이라는 여귀의 장난에 의하여 임금에게 ‘미평국(未平國)’이 ‘미득국(未得國)’으로 잘못 읽혀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4단계는 모두 원혼과 관계있는 것들이다. 실제로 남이는 의산위(宜山尉) 남휘(南暉) 의 아들이고 태종의 외손이라는 명문가에서 태어났음에도, 설화에서는 그같은 신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남이의 죽음을 억울한 것으로 인식해 온 설화 향유층의 동정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의 죽음을 납득할 수 없는 향유층은 그것을 원귀의 작용으로 해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이 설화의 향유층은 남이를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세계의 횡포로 좌절당하는 민중적 영웅으로 이해하고, 그와 맥락을 같이하는 설화 유형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유형은 인물의 실제 행적과 상관없이 향유층에 의하여 민간 영웅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자료이다. 뒤에 민간 신앙에서 ‘남이장군신’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져 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