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털옷 신랑 설화」는 아내의 초상화로 인해 임금에게 아내를 빼앗긴 남자가 새털 옷 때문에 아내를 다시 찾게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가난한 총각이 미인을 아내로 삼았다가 아내의 초상화를 본 임금이 아내를 빼앗아 가자 새털 옷을 입고 찾아가 아내를 웃게 하였고, 이를 본 임금이 옷을 바꿔 입자 그를 내쫓고 새로 왕이 되어 아내를 되찾게 된 이야기이다.
신이담(神異譚)에 속하는 설화로, 채록자에 따라 ‘아내의 초상화’, ‘솔개로 된 천자’ 등으로 명명한 경우도 있다. 문헌 설화는 허균(許筠)의 『성수패설(醒睡稗說)』에 수록되어 있으며, 구전 설화는 일찍이 손진태(孫晉泰)가 1933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채록한 것이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10여 편이 채록된 바 있다. 『임석재전집』 2에도 평안북도 정주 및 신의주에서 1937년에 채록한 유화(類話)가 소개되어 있다.
이 설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가난한 총각이 새 잡이와 구걸을 하여 연명하다가 우연히 미녀를 아내로 얻게 되었다. 남자가 아내만 바라보고 좀처럼 일 나갈 생각을 하지 않자, 여자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주어 일터로 보냈다. 남자는 그 초상화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일을 시작하였다. 이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와 초상화를 쓸어 가 버렸다.
바람에 날린 초상화는 임금이 있는 궁중 뜰에 떨어졌다. 이를 발견한 임금은 초상화의 주인공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닌 끝에 미녀를 발견하여 억지로 임금에게로 데려갔다. 임금은 그녀를 왕비로 삼았다.
한편, 아내를 잃은 남자는 다시 새 잡이를 하며 구걸을 하고 다녔다. 이때 임금은 미녀의 마음을 돌리려 애를 썼으나 그녀는 도무지 웃을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걸인 잔치를 열어 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임금은 기꺼이 응하였다. 궁중의 걸인 잔치는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왕비의 본남편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잔치가 끝나는 마지막 날 새털 옷을 입은 남자가 참석하여 유쾌히 춤을 추었다. 이 모습을 본 왕비는 비로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임금은 그 웃음의 원인이 새털 옷 때문이라 생각하고 걸인을 불러 옷을 바꿔 입자고 명령하였다. 임금의 옷을 입은 남자는 용상으로 올라가 앉고, 임금은 걸인으로 몰려 궁 밖으로 쫓겨났다. 다시 만난 부부는 왕과 왕비로서 행복하게 살았다.
이 설화의 구성은 전반의 ‘미녀와의 혼인→날려간 초상화→빼앗긴 아내’라는 화소(譁笑)와 후반의 ‘웃지 않는 미녀→걸인 잔치→옷 바꿔 입기’라는 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서사는 「우렁각시」 같은 ‘관탈민녀형’ 서사의 비극적 결말 구조를 극복하고, 「내 복에 산다」 같은 ‘남편 출세 돕기형’ 서사 속 민중적 소망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본에 따라서는 미녀를 빼앗아 간 주체가 임금 대신 ‘대국 천자’나 ‘부잣집 영감’인 이야기도 있다. 이들은 모두 남자 주인공이 대항할 수 없는 세력자라는 점에서는 ‘임금’과 동일하다. 미천한 주인공이 이들과 싸운 끝에 아내를 되찾고 부귀를 차지한다는 데서, 이 이야기에 투영된 민중들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
이 설화는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는 ‘아내 찾기 탐색담’의 하위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채록 · 보고된 것으로 보아, 동북아시아 일대에 널리 유포된 유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이 설화의 끝에 새털 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 올라간 임금이 다시 땅 위로 내려오는 방법을 몰라 끝내 솔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몇 편 채록되었다. 우리나라 · 중국 · 일본 등 3국에서는 ‘난제 해결’ 모티프의 포함 여부에 따라 2개의 하위 유형으로 세분되는데, 일본은 난제 해결 유형이 많이 나타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이런 유형이 매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