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목축시험장

  • 역사
  • 제도
  • 개항기
1884년(고종 21) 농업 개량을 위해 설치한 모범 농장.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찬
  • 최종수정 2023년 09월 25일
농무목축시험장소존곡약종 미디어 정보

농무목축시험장소존곡약종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농무목축시험장은 1884년(고종 21) 농업 개량을 위해 설치한 모범 농장이다. 보스턴 박람회와 모범농장을 시찰한 보빙사 일행이 미국 농기구의 도입과 모범 농장 설치를 구상하였다. 홍영식이 미국 시찰 결과를 보고하면서 건의하여 망우리에 설치되었다. 미국 농무성에서 얻어온 344종의 작물의 재배법 등을 소개한 해설서와 수확물 종자를 보급하여 재배를 권장하였다. 하지만 관리를 맡은 최경석의 죽음과 미국의 농업 기술자 초빙이 어려움으로 인해 방치되었다. 최경석이 정리한 『농무목축시험장소존곡채종』은 새로운 농작물 및 품종의 도입 등 농업 기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정의

1884년(고종 21) 농업 개량을 위해 설치한 모범 농장.

개설

미국의 농기구, 각종 농작물 종자, 가축 도입을 통해 품종 개량, 낙농업 개발, 서구 농업법 도입 등을 시도하였다.

내용 및 변천사항

1883년 12월 20일 홍영식(洪英植)이 미국 시찰 결과를 보고하면서 설치를 건의한 바, 고종의 토지 하사와 재정 지원으로 적전(籍田)이 위치한 망우리에 설치되었다. 관리관은 훈련원 첨정 최경석(崔景錫)이었다.

1883년 9월 보빙사(報聘使) 일행이 미국을 방문중일 때 이미 설치가 구상되고 상당한 준비가 진행되었다. 일행은 보스턴 박람회와 보스턴 부근의 월콧모범농장(Walcott Model Farm)을 시찰하면서 미국 농기구의 도입과 모범 농장 설치의 필요성을 느꼈으며, 미국 농무성으로부터 각종 농작물의 종자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권 대신 민영익(閔泳翊)은 미국 국무장관에게 농업 기술자 파견을 요청해 국무장관의 협조 약속을 얻어냈다. 한편, 오랫동안 동양 무역에 종사해 온 미국 상인과 농기구 등 각종 기계 구입을 계약하였다. 또한 해군 중위 포크(Foulk)는 종자와 가축의 도입, 농업 기사 초빙 등을 주선해 주었다.

1884년 봄 보빙사 일행이 미국에 체재할 때 주문한 농기구가 시험장에 도착해 미국 농무성으로부터 가져온 각종 작물 · 야채 · 과수 등 344종(재래종 포함)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1884년에는 재배법 · 사용법을 소개한 해설서와 함께 305군현에 수확물 종자를 보급해 재배를 권장하기도 하였고, 1885년에는 궁중 및 외국인 거주자에게 다량의 야채를 공급하기도 하였다.

또한 가축의 품종 개량, 사육 방법 개선, 버터와 치즈 생산 등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우선, 이를 위해 고종으로부터 하사 받은 8리의 땅에 1885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말 · 소 · 젖소 · 돼지 · 양을 사육하였다.

관리관 최경석이 농업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시험장은 한동안 순조롭게 운영되었으나 미국으로부터 농업 기술자 초빙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리고 최경석마저 1886년 봄 갑자기 죽음으로써 운영이 여의치 못했다. 거기에다가 1886년 9월에는 청나라가 시험장 설치를 포함한 근대적인 사업을 철폐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왕실과 직접 관련된 독립 기구였으나, 1886년 7월 15일 명칭이 종목국(種牧局)으로 개칭되어 내무부(內務部) 농무사(農務司)에 속하게 되면서 종목국의 활성화와 농업학교[農務學堂]설치를 위해 1887년 9월 영국인 농업 기술자를 초빙하기도 하였으나 그마저 1888년 7월 죽음으로써 시험장 사업은 흐지부지되었다. 그 뒤에도 시험장이 계속 존속하기는 하였으나 거의 방치되었다.

의의와 평가

시험장에서 재배, 사육된 작물과 가축의 상황이 1884년 최경석이 작성한 『농무목축시험장소존곡채종(農務牧畜試驗場所存穀菜種)』이라는 책에 정리되어 있다. 표제는 ‘시험장각종목록’으로, 농작물은 16항목으로 나누어 344종의 품명을 기록하고 있고, 가축은 돼지 1종 64수만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셀러리 · 양배추 등 새로 도입된 양채(洋菜)는 한글로 표기되고 있다. 새로운 농작물 및 품종의 도입 등 농업 기술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 『한국사강좌(韓國史講座)』 Ⅴ-근대편(近代篇)-(이광린, 일조각, 1981)

  • - 「농무목축시험장(農務牧畜試驗場)의 설치에 대해」(이광린, 『김재원박사회갑기념논총(金載元博士回甲紀念論叢)』, 196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