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로는 목어(木魚) · 은어(銀魚) · 환목어(還木魚) · 환맥어(還麥魚) · 도로목어(都路木魚)라고 하고, 방언으로는 도로묵 · 도루무기 · 돌목어라 한다. 학명은 Arctoscopus japonicus (Steindachner, 1881) 이다.
몸길이는 25∼26㎝ 정도로, 몸이 가늘고 길며 측면이 편편하다. 뒷지느러미가 배에서 꼬리 가까이 길게 발달하였고, 등에는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황갈색의 무늬가 있다. 옆구리와 배는 흰색인데, 옆줄과 비늘이 없다.
동해안의 중부 이북에 많으며, 평상시는 수심 100∼400m의 해저 모래진흙에 서식하나, 산란기인 초겨울이 되면 물이 얕고 해조류가 무성한 곳으로 모여든다. 서유구(徐有榘)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는 “배가 희게 빛나 운모가루를 붙여놓은 것처럼 보여 본토박이들이 은어라고 부르며, 9∼10월이 되면 그물을 설치하여 잡는다.”고 하였다.
도루묵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정조 때 이의봉(李義鳳)이 편찬한 『고금석림(古今釋林)』과 조선 말기 조재삼(趙在三)이 지은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전한다. 『고금석림』에 의하면 “ 고려의 왕이 동천(東遷)하였을 때 목어를 드신 뒤 맛이 있다 하여 은어로 고쳐 부르라고 하였다. 환도 후 그 맛이 그리워 다시 먹었을 때 맛이 없어 다시 목어로 바꾸라 하여, 도루묵〔還木〕이 되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조선조의 인조가 이괄(李适)의 난으로 공주에 피신하는 과정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 전설도 있다. 또 다른 유래담으로는, 원래 맥어(麥魚)였는데 은어로 개명되었다가 다시 환맥어로 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함경도에서 은어가 났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은어가 잡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은어는 과거에 은구어(銀口魚)라고 하여 구별하였다.
도루묵은 조선시대까지는 그다지 많이 잡히지 않았고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낮았다. 광복 후 어장이 강원도 이남의 동해안지방으로 한정되어 어획량이 적으며 해마다 변동이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