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공주묘지(貞惠公主墓誌)의 내용에 따르면, 777년 정혜공주가 40세에 사망하자 780년에 “진릉의 서원에 매장하였다(陪葬於珍陵之西原)”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진릉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된다. 진릉의 주인공이 어느 왕인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느 무덤인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몇 가지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첫째, 진릉의 주인공은 발해 제2대 왕인 무왕대무예(大武藝)의 무덤이라는 견해이다. 정혜공주가 사망했을 때 그의 아버지인 문왕대흠무(大欽茂)는 살아서 왕위에 있었기 때문에 진릉은 정혜공주의 할아버지인 무왕의 무덤이 되어야 옳다고 본다.
둘째, 진릉은 발해 제3대 왕인 문왕대흠무의 무덤이라는 견해가 있다. 정혜공주가 사망했을 당시 문왕이 재위하고 있었던 사실은 맞지만 그의 왕비가 정혜공주보다 1년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왕비의 안장(安葬)을 위하여 생전에 미리 이 무덤을 조성했으며 차후 자신의 무덤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셋째, 진릉의 주인공은 무왕이나 문왕도 아닌 정혜공주의 생모인 문왕의 왕비 무덤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견해 역시 왕비를 안장하기 위하여 문왕 생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두 번째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진릉이 육정산고분군 가운데 어느 무덤에 해당하는가 하는 문제도 몇 가지 주장이 제시되어 있다.
첫째, 육정군고분군에서 Ⅰ구역에 위치한 IM6이 진릉이라는 견해이다. Ⅰ구역 동쪽에 있는 Ⅱ구역에는 규모면에서 정혜공주 무덤보다 큰 무덤이 없기 때문에 Ⅰ구역에서 진릉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정혜공주 무덤에서 동쪽으로 약 30m 떨어져 있는 IM6은 봉토의 지름 22m, 널방 길이 4.55m, 너비 1.69m, 남아 있는 높이 88㎝로 대형급 무덤에 속한다. 무덤 널방은 잘 가공된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하였으며, 널방에 퇴적된 흙에서는 붉게 칠한 돌사자의 귀조각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정혜공주무덤에서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한 것이다. 그밖에도 널방 안에서는 벽화의 잔편과 꽃무늬벽돌〔花紋塼〕등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둘째, 육정산고분군의 Ⅱ구역에 있는 제206호 무덤이 진릉이라는 설이다. Ⅱ구역은 상대적으로 평탄하고 넓게 트여 있어 Ⅰ구역보다 지세가 우세하다. Ⅱ구역의 무덤들은 규모는 비록 그리 크지 않지만 무덤의 시기는 비교적 이르다. 그 가운데 제206호 무덤은 Ⅱ구역의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널방은 네모모양〔方形〕이며, 널방의 한 변 길이는 2.7m이다. 무덤 구조는 비교적 복잡하며, 무덤 안에서는 항아리, 쇠화살촉, 철제 띠고리, 청동팔찌, 청동귀걸이, 청동띠고리, 청동방울, 마노(瑪瑙) 구슬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한편, 만약 진릉이 발해 제3대 왕인 문왕의 능이라고 가정한다면 좀 더 큰 범위의 구역에서 진릉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즉, 문왕은 737년 돈화 “구국(舊國)”에서 즉위한 뒤 천보(天寶, 742∼756) 연간 중간에 중경(中京)으로 천도하였다. 천보 연간 말에는 다시 동경(東京)으로 천도하였기 때문에 문왕은 동경에서 사망한 것이 된다. 따라서 문왕의 진릉은 돈화 동쪽의 기타 지역에 존재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파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