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공주 묘 ( )

선사문화
유적
중국 지린성 돈화시 육정산고분군에 있는 발해 제3대 문왕의 둘째 딸 무덤.
이칭
이칭
육정산고분군 제1묘구 2호 무덤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무덤
건립 시기
780년
관련 국가
발해
관련 인물
정혜공주
소재지
중국 지린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정혜공주묘(貞惠公主墓)는 중국 지린성 돈화시 육정산고분군에 있는 발해 제3대 문왕의 둘째 딸 무덤이다. 육정산고분군 제1묘구 2호 무덤으로 명명되었으며, 무덤길, 널길, 널방이 있는 돌방무덤이다. 널길에서 돌사자 2구와 함께 비석이 발견되었다. 묘비의 내용을 통해 정혜공주가 발해 제3대 문왕의 둘째 딸이고, 777년에 4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3년이 지난 780년인 보력 7년에 진릉(珍陵)의 서쪽에 딸린무덤의 형태로 묻혔음을 알 수 있다.

정의
중국 지린성 돈화시 육정산고분군에 있는 발해 제3대 문왕의 둘째 딸 무덤.
발굴 경위 및 결과

중국 지린성〔吉林省〕 돈화시(敦化市) 강남진(江南鎭) 육정산(六頂山) 육정산고분군의 제1묘구에 자리한다. 제1묘구에서는 남쪽으로 영승유적이, 남서쪽으로 목단강 건너 발해 동모산으로 추정되는 성산자산성이 각각 바라보인다. 육정산고분군은 19301940년대에 이미 도굴되었고, 1949년, 1957년, 1959년, 19631964년, 2004~2009년에 각각 발굴 조사가 되었다.

형태와 특징

육정산고분군 전체 무덤의 수는 2004~2009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쪽의 제1묘구에 105기, 동쪽의 제2묘구에 130기가 각각 분포한다. 발굴 조사된 무덤의 수는 41기로 집계되었다.

제1묘구에는 하부와 중부 지역에 대형 돌방무덤과 돌을 쌓아 만든 밑받침으로 보고된 제단 추정의 부석 시설이 있다. 상부 지역에는 소형 돌방무덤과 널무덤이 각각 주로 분포하며, 하부에서는 구들 주거지도 조사가 되었다.

제2묘구에는 중소형의 돌방무덤과 널무덤이 주로 분포하는데, 널무덤이 67기로 집계되었다. 무덤의 형식은 대체로 돌방무덤, 돌덧널무덤, 돌널무덤, 널무덤으로 구분된다. 장사(葬事)를 지내는 예법은 다인장과 2차장이 확인되었는데, 나무널이나 덧널의 경우 무덤을 태우는 번소도 있었다. 제1묘구와 제2묘구는 무덤의 종류도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유물도 제2묘구의 경우 말갈계 토기가 다수를 차지하여 서로 차이를 보인다.

정혜공주묘는 육정산고분군 제1묘구의 중부 지역에 자리하는 2호 무덤이다. 널방, 널길, 무덤길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돌방무덤이다. 널방은 땅을 파고 만들었는데, 깊이가 약 2m이다. 널방은 평면상 방형에 가까우며, 크기는 남북 길이 2.82.94m, 동서 너비 2.62.84m이고, 천정까지의 높이는 2.68m이다.

널방의 네 벽은 다듬은 용암과 현무암 석재를 8~9층 쌓아 조성하였는데, 위로 가면서 안쪽으로 조금씩 좁아진다. 벽면에는 석회를 바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널방의 바닥에는 장방형의 벽돌을 엇갈리게 깔고 백회, 목탄(木炭), 모래 등을 폈으며, 그 위에 큰 널돌을 놓아 널받침으로 삼았다. 천장은 평행삼각고임 형식이다.

널길은 널방의 남벽 가운데에 자리하며, 크기는 길이 1.74m, 너비 1.1m, 높이 1.4m이다. 널길의 천장에는 장방형의 큰 널돌 3매를 덮었다. 무덤길은 길이 11m, 너비 2.45m이며, 바닥의 남단과 중단에는 돌을 폈고, 중단에는 돌 위로 다시 벽돌을 깔았다.

유물은 널길에서 발견된 비석과 돌사자 두 마리가 대표적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은 형태가 규형이며, 좌우의 가장자리는 넝쿨무늬로 장식하였고, 윗부분은 넝쿨무늬와 구름무늬를 각각 음각하여 장식하였다. 크기는 높이 90㎝, 너비 49㎝, 두께 29㎝이다.

비석의 앞면에 21행 725자를 해서체로 새긴 것이 확인되었으나, 491자만 판독되었다. 서(序)가 13행, 명(銘)이 6행이고, 나머지 행에는 비석을 세운 연월일시를 새겼다, 돌사자는 수컷과 암컷이 각각 한 마리씩이며, 크기는 높이가 51㎝와 47㎝이다.

의의 및 평가

1949년에 연변대학교에서 정혜공주묘를 발굴하여 육정산고분군의 중요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돈화 지역을 발해의 중심지였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널길에서 발견된 비석은 무덤의 주인공이 정혜공주임을 보여 주었다. 비석의 내용에 따르면 정혜공주는 발해 제3대 문왕의 둘째 딸이었으며, 777년에 4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3년이 지난 780년인 보력(寶曆) 7년에 진릉(珍陵)의 서쪽에 있는 딸린무덤의 형태로 묻혔다.

진릉은 발해 제2대 무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곳 어딘가에 무왕의 능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진릉은 정혜공주묘 동쪽 약 30m 거리에서 조사된 파괴 및 도굴된 무덤으로 추정된 바 있는데, 이 무덤은 제1묘구의 6호 무덤으로 생각된다. 평면 장방형의 대형 돌방무덤인 이 무덤에서는 돌사자 귀와 벽화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다만, 진릉에 대해서는 제2묘구의 206호 무덤이라는 의견도 있어 아직 분명하지 못하다.

정혜공주묘는 고구려의 평행삼각고임천장 굴식돌방무덤의 형식을 따르고 있어 발해의 고구려 문화를 이어받았음을 보여준다. 정혜공주묘의 비문은 사료(史料)가 부족한 발해의 역사 연구와 절대연대(絕對年代) 자료가 부족한 발해의 유적 및 유물 편년 문제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敦化市文物管理所, 『六頂山渤海墓群-2004~2009年淸理發掘報告-』(北京: 文物出版社, 2012)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編著, 『六頂山與渤海鎭-唐代渤海國的貴族墓地與都城遺址-』(北京: 中國大百科全書出版社, 1997)
吉林省文物志編委會 主編, 『敦化市文物志』(延邊: 吉林省文物志編修委員會, 1985)

논문

王洪峰, 杜運發, 「吉林敦化市六頂山墓群 2004年發掘簡報」(『考古』 6,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2009)
송기호, 「六頂山 古墳群의 성격과 건국집단」(『산운사학』, 고려학술문화재단, 1998)
조 · 중공동고고학발굴대, 「돈화 륙정산 무덤떼」(『중국 동북지방의 유적 발굴보고(1963~1965)』, 사회과학출판사,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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