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망경보살계본사기』는 상하 2권 1책으로 이루어졌으나 하권은 사라지고 상권만이 현존한다. 속장경(續藏經) 제1편 95투(套) 제2책(冊)에 수록된 것을 저본으로 하여 교감한 책이 한국불교전서 제1책에 수록되어 있다.
『범망경』 본문을 먼저 크게 제목을 풀이하는 문과 문장을 해석하는 문의 둘로 나누어서 해석하였다.
제목을 풀이하는 문에서 본경의 갖춘 이름인 『범망경보살심지품(梵網經菩薩心地品)』에서 ‘지’에 대한 세 가지 풀이를 소개하였다. 첫째, 보살 수행의 50계위를 소주지(所住地)라고 하고, 보리심을 능주(能住)라고 한다. 둘째, 삼취계(三聚戒)를 소주지라고 하고, 보리심을 능주라고 한다. 셋째, 법계를 소주지라 하고, 중생심(衆生心)을 능주라고 한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설을 소개하면서 비판적 태도를 보이거나, 별도의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두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장을 해석하는 문에서는 주석의 대상인 『범망경』은 61품 가운데 한 품만 한역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경전을 구성하는 세 구조, 곧 서분 · 정설분(정종분) · 유통분의 형식을 실제로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뜻에 의거하여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고, 『범망경』에서 주석의 대상이 되는 부분을, 서분, 정종분, 유통분으로 나누었다. 하권이 사라졌기 때문에, 정설분 가운데 48경계를 설한 부분과 유통분과 관련된 내용은 알 수 없다.
서분에서는 크게 노사나불의 서분, 타방(他方) 석가의 서분, 차방(此方) 석가의 서분이라는 세 가지으로 나누어 본경의 설법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밝혔다.
노사나불의 서분에서는 당시까지 응신으로 알려진 ‘노사나’가 본경에서 설법의 화주로서 법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삼불문(三佛門)과 일불문(一佛門)이라는 개념을 통해 해소시키고 있다.
중도에 계합하는 것이 승보(僧寶)의 의미라고 한 것, 보름마다 계를 외우는 것은 중도를 취한 것이라고 해석한 것, 계의 실체적 유(有)에 집착하면 계의 실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위범이고 계의 실체적 무(無)에 집착하면 계를 잃는다고 한 것 등에서 원효의 중도적 사유 체계를 볼 수 있다.
또한 ‘심지’를 해석하면서, “삼취계를 소주지(所住地)로 삼는다.”라고 한 것, ‘감로문’을 해석하면서, “소전(所詮)의 삼취계법을 감로로 삼는다.”라고 하고, “삼취계를 문으로 삼는다.”라고 한 것, 본문의 ‘계’를 삼취정계라고 해석하고, 삼취정계를 모두 갖추어야 무상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한 것, 10중계 중 불살계(不殺戒)를 풀이하면서 10중계는 모두 섭율 의계에 속한다고 한 것 등에서 유가계인 삼취계(三聚戒, 三聚淨戒)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설분은 10중계와 48경계의 두 문으로 나누었는데, 후자는 하권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그 내용을 알 수 없고, 10중계와 관련된 내용만 파악할 수 있다.
각 계에 부여한 명칭의 의미를 지지(止持)와 작범(作犯)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한 것, 계의 위범의 경 · 중을 논할 때, 전상(轉想) · 본미(本迷) 등의 개념을 차용한 것 등에서 남산율종(南山律宗)의 개조인 도선(道宣, 596~667)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범망경』에서 설한 10중계 가운데 제1불살계 · 제2투도계 · 제3불음계 · 제4망어계의 네 계에는 모두 중간에 ‘내지(乃至)’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위범의 대상 범주가 확장되는 지점에 놓여져 있는데, 이것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다음의 둘로 나뉜다. 즉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확장성으로 해석하는 그룹과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확장성으로 제한하는 그룹이다. 원효는 지의와 마찬가지로 ‘내지’를 단지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확장성으로 파악함으로써, 문장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적 측면을 고려한 원리주의의 완화를 시도하였다. 이는 의적 · 승장 · 태현이 ‘내지’를 문자 그대로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확장성으로 파악하여, 원리주의적인 입장을 고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원효의 해석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달기보살(達機菩薩)이라는 용어이다. 원효는 곳곳에서 중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어도 달기보살은 죄가 없고 오직 복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의도라면 위범이 아니라고 하는 유가계의 방편적 사유 체계 및 원효 자신의 삶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범망경보살계본사기』는 한국에서 찬술된 『범망경』 주석서 중 현존하는 최초의 주석서이고, 또한 동아시아에서 찬술된 현존하는 『범망경』 주석서 가운데에서도 그 최초인 지의(智顗)의 『보살계의소(菩薩戒義疏)』 다음에 놓여진다. 보살계 관련 원효의 저술로는 현재 『보살계본지범요기』가 전해지는데, 이 책은 십중계 중 자찬훼타계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범망경보살계본사기』는 그 수록 범위가 십중금계(十重禁戒)를 모두 다루고 있어 이 책을 통해 그 한계를 넘어서 원효의 계율관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주석서이기 때문에 전후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어서 원효의 여타 학자와의 사상적 교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신라 승려 자장(慈藏)에 의해서 소승계(小乘戒)가 정착되었다면, 본서는 한국에서 대승계(大乘戒) 유입의 전형을 보여 주는 저술로서 그 의미가 자못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무라 센쇼(吉津宜英)가 본서에 대해 위찬설(僞撰說)을 제시한 이래 다양한 논쟁에 휘말려 왔다. 이후 위찬설에 대한 반론, 진찬의 새로운 근거 제시, 진찬의 근거로 제시된 것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아직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