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봉정사 대웅전은 경상북도 안동시 봉정사에 있는 조선 전기 다포계 팔작지붕의 사찰건물이다. 2009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봉정사는 7세기 의상대사와 그의 제자 능인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절의 대웅전은 1363년 정도에 중수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자연석 초석 위에 민흘림의 원기둥을 세웠다. 내부에는 중심에 석가모니불을,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하였다. 봉정사 대웅전은 일반적인 불전과 달리 정면에 툇마루와 난간을 시설하였다. 건실한 가구 구조와 오래된 건축 수법 등 한국 건축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건축물이다.
봉정사는 1973년 극락전 해체수리 때 발견된 상량문(1625년), 「천등산 봉정사기(天燈山 鳳停寺記)」(1728), 「양법당 중수기(兩法堂 重修記)」(1809년) 등에 창건 기록이 있다. 대부분 7세기 후반 의상과 능인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작성 시기가 가장 빠른 「법당중창기(法堂重創記)」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500여 년이 흐른 1435년(세종 17) 대웅전을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봉정사는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경내에 있는 석조물들도 시기적으로 유사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봉정사 대웅전은 건립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극락전 상량문에는 1363년에 극락전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비슷한 시기에 대웅전도 중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7년에는 영산회상 벽화(보물, 2009년 지정)가 발견되었는데 그림의 표현기법이나 색조가 고려 불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1999년 해체 보수하면서 대웅전 우측면 불단의 상판 하부에서 1361년 봉정사의 탁자를 조성했다는 묵서가 발견되어 대웅전의 건축연대를 고려시대로 올려보기도 한다.
봉정사 대웅전은 「법당중창기」(1435년), 「정면어칸기둥묵서」(1436년), 종도리 하부에 기록된 「대웅전개연중수기(大雄殿改緣重修記)」(1601년) 등을 볼 때 1625년(인조 3) 이전에 6번의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에도 3차례 정도 중수를 거쳤으며 1809년(순조 9)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단청을 다시 하였다. 1963년과 1975년, 1996년에 부분적인 보수를 거쳐 1999년부터 이듬해까지 전체적으로 해체 보수하였다.
봉정사는 동서로 긴 대지 위에 대웅전과 극락전을 중심으로 영역이 구분되어 있다. 만세루 밑으로 들어서면 대웅전 영역에 이르게 된다. 대웅전은 만세루와 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대웅전 앞마당을 향하여 화엄강당과 종무소가 마주보고 서 있다. 대웅전의 서쪽에는 극락전, 삼층석탑, 고금당이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집으로 자연석 허튼층쌓기 한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민흘림의 원기둥을 세웠는데 바깥 기둥은 약간의 배흘림이 있다. 공포는 내외(內外) 2출목(出目)으로 심원사 보광전(1374년 중창) 및 서울 숭례문(1396년 창건)과 양식이 유사하다. 주두는 굽받침이 없으며 첨차는 소첨차와 대첨차를 사용하였다. 초제공은 쇠서가 없는 교두형(翹頭形)이고, 2제공은 쇠서가 아래쪽으로 힘차게 뻗은 수서형(垂舌形)이며, 3제공은 삼분두(三分頭)로 조각하였다.
가구 구조는 1고주(高柱) 5량(梁) 형식이다. 고주는 직접 종보를 받으며 측면 기둥열에서 약간 뒤쪽으로 물려 세웠다. 이것은 구조를 고려하면서 불단 앞 공간을 넓게 활용하기 위한 수법이다. 대들보와 툇보는 고주에 결구시켰으며 2제공 위에 걸쳐져 보머리가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대들보 위에는 짧은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받으며 뜬창방이 동자주를 잡아주고 있다. 종보 위에는 다시 동자주를 세워 종도리를 받쳤고 종도리 양 옆에는 솟을합장을 설치하였다.
창호는 정면의 경우 어칸에 4짝 분합문을 달고 좌우 협칸에는 2짝 띠살문을 2개씩 설치하였다. 측면에는 어칸을 제외한 나머지 칸에 모두 2짝 띠살문을 달았으며 배면에는 모든 칸에 2짝 판문을 달았다. 천장은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꾸몄으며 불상 상부는 보개천장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사용한 겹처마이다.
봉정사 대웅전은 일반적인 불전과 달리 정면에 툇마루와 난간을 시설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도 복원하기 전에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구조적인 특징은 일반적인 팔작집과 달리 측면 기둥과 대들보를 연결하는 충량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가구수법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1962년 지정)과 심원사 보광전 등 오래된 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는 수법이다. 또한 복화반(覆花盤)을 사용한 것, 공포재의 구성 형식, 종도리 하부에 솟을합장을 사용한 것, 예전의 부재로 보이는 굽받침이 있는 주두, 연화두형(蓮花頭形: 일명 쌍S자 곡선)으로 초각한 첨차 등에서도 오래된 건축 수법이 잘 나타나 있다.
봉정사 대웅전은 건실한 가구구조와 세부 건축 수법 등에서 초기 다포계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내에 남아 있는 극락전(국보, 1962년 지정), 화엄강당(보물, 1967년 지정), 고금당(보물, 1967년 지정)과 함께 한국건축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목조 건축물이다. 내부에 있는 불단은 고려 말기인 1361년에 제작된 것이며 단청도 고려시대의 수법을 일부 간직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