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여신(成汝信: 1546~1632)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공실(公實), 호는 부사(浮查) · 야로(野老) · 부사(桴槎)이다. 증조부는 홍문관교리를 역임한 성안중(成安重), 조부는 성일휴(成日休), 아버지는 경기전봉사(慶基殿奉事) 성두년(成斗年)이다.
8권 4책의 목판본이다.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경상대학교 도서관에는 문중 소장본의 복사본이 있고,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영본(零本) 1책[권3, 4],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 영본 3책[권14, 권78]이 있다.
성여신의 현손(玄孫) 성처회(成處會)가 유고를 수습하고, 성처회의 아들 성대적(成大勣)이 문체별로 편정하고 「연보」를 작성해 붙임으로써 문집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성여신의 외손서인 안창한(安彰漢)의 아들 안시진(安時進)이 「언행록」을 저술하여 성처회에게 보내 부록에 편입시켰으나 문집이 바로 간행되지는 않았다. 그 후 1785년 성대적의 족질 성동익(成東益)과 족손 성사렴(成師濂)이 안정복(安鼎福)에게 시문집의 교정을 청하고 서문 · 행장 · 묘갈명 등을 받아서 간행하였다.
권두에 안정복의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 126수, 권2에는 시 30수, 사(辭) 1편, 부(賦) 2편이 실려 있다. 권3에는 소(疏) 1편, 서(書) 6편, 서(序) 2편, 발(跋) 1편, 기(記) 7편이 실려 있다. 권4에는 상량문 3편, 잠(箴) 3편, 찬(贊) 20편, 비명(碑銘) 2편, 묘지명 1편, 제고축문(祭告祝文) 7편이 실려 있다. 권56에 잡저 10편, 녹(錄) 2편, 침상단편(枕上斷編) 1편, 권78은 부록으로 세계도 · 연보 · 언행록(言行錄) · 행장 · 묘갈명 각 1편, 만사 10수, 제문 · 봉안문 · 상향문(常享文) 각 1편이 실려 있다.
시는 대개 만년의 작품이다. 자신의 이상을 펴 보지 못한 한(恨), 현실을 직시하는 내용,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고자 하는 안빈낙도, 역사에 대한 회고 등을 시로 읊고 있다. 「아유일가(我有一歌)」는 자신이 천리마의 재주를 지니고 있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시골에 묻혀 곤궁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나타낸 것이다. 「도초사(舠樵辭)」는 「어부사(漁父辭)」를 본떠 지은 것으로, 강호에 은거하는 삶의 지향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안회(顔回)의 안빈낙도를 다짐하고 있다. 「화황아병중술회부(和鐄兒病中述懷賦)」는 셋째 아들의 병중에 본인의 공부 내력과 과거에 실패한 것 등을 돌아보며 아들에게 마음을 잘 조섭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양전시진폐소(量田時陳弊疏)」는 임진왜란 때 영남의 역할과 수군의 중요성을 논하고, 영남이 양전의 폐단으로 말미암아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을 역설한 글이다. 「대김장군덕령상체찰사이공원익서(代金將軍德齡上體察使李公元翼書)」는 1595년 겨울에 도체찰사 윤근수(尹根壽)의 노비를 장살한 죄로 체포된 김덕령(金德齡)을 대신하여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여 올린 것이다. 그 밖에 무성왕묘(武成王廟)의 건립을 요청하는 편지, 진양(晉陽)의 유생을 대신하여 서책의 반급(頒給)을 요청하는 편지 등 향촌 사회에서의 역할을 보여 주는 내용들이 포함된다.
서(序)와 기는 부사정(浮査亭)과 그 주변의 건축물에 대한 것이 대부분으로 저자의 아들이 학동을 가르치는 지은사(知恩舍)의 「게호서(揭號序)」와 「명당실기(名堂室記)」, 「양직당기(養直堂記)」 등이다. 이외에 「진양전성기(晉陽全城記)」는 임진왜란 때 김시민(金時敏)의 진주성 방어에 대한 것으로 남이흥(南以興)의 요청에 따라 1619년에 지은 것이다. 「연주시발(聯珠詩跋)」은 원나라 때 만든 당 · 송의 대표적 시를 뽑아 평석을 붙인 『당송천가연주시격(唐宋千家聯珠詩格)』에 발문을 단 것으로, 성여신의 시론(詩論)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동방제현찬(東方諸賢贊) 」은 우리나라 현인 20명을 선정하여 그들의 학문과 덕을 칭송한 시이다. 최치원(崔致遠),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김종직(金宗直) 등의 학문에 대한 공적과 나라에 대한 충절을 칭찬한 글이다. 「삼자해(三字解)」는 『주역』 「곤괘(坤卦) 육이(六二)」에 나오는 ‘직(直) · 방(方) · 대(大)’를 ‘경(敬) · 의(義) · 성(誠)’에 연관시킨 것으로, 성여신이 추구한 학문의 요체를 드러낸 글이다. 「경계책(經界策)」은 토지 제도와 세금 문제를 논한 글이다.
「계서약록기(鷄黍約錄記)」는 이대약(李大約) · 이종영(李宗榮) 등과 매년 봄 · 가을에 만나는 계서회의 모임을 결성하게 된 배경을 기록한 글이고, 「계서록(鷄黍錄)」은 그 실제 모임을 기록해 놓은 글이다. 「금산동약병서(琴山洞約幷序)」는 금산 마을에 향약을 시행한 내력과 그 규약을 기록해 놓은 글이다. 「종유제현록(從遊諸賢錄)」은 스승 남명(南冥) 조식(曺植), 구암(龜巖) 이정(李楨), 약포(藥圃) 정탁(鄭琢)으로부터 종유했던 인물들을 대략 기록해 놓은 글로, 그의 사승 및 교유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침상단편(枕上斷編)」은 학문의 요체에 관해 언급한 내용으로, 태극(太極) · 이기(理氣) · 오행(五行) · 오상(五常) · 심통성정(心統性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여신의 학문적 · 문학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저술로, 남명학의 전개 양상을 살피는 데 유용한 자료로 여겨진다.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전반까지 진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 인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살피는 데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