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진주에서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한 문인.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568년(선조 1) 동료들과 단속사(斷俗寺)에서 『삼가귀감(三家龜鑑)』의 목판 및 오백나한(五百羅漢)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불태웠다.
그리고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찾아가 『상서』를 배운 조식의 문인이다.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과 교유하였다. 응석사(凝石寺), 쌍계사(雙磎寺) 등지에서 공부하였고, 1581년(선조 14)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방문하였다. 1582년 곽재우(郭再祐), 이대기(李大期)와 사굴사(闍崛寺)에서 공부한 후 1585년 진주로 돌아왔다.
1600년 부사정(浮査亭)과 반구정(伴鷗亭)을 건립하였다. 1609년(광해군 1) 생원시와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1613년 별시(別試) 동당(東堂)에 장원급제하여 상경했지만, 과거를 포기하고 귀향하였다. 다음 해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살해에 대하여 상소한 정온(鄭蘊)이 하옥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위해 의령소회(宜寧疏會)에 참여하였다.
1616년 금산동약(琴山洞約)을 만들고, 양몽재(養蒙齋)와 지학재(志學齋)를 세워 후학을 교육하였다. 같은 해 가을, 정대순(鄭大淳), 박민(朴敏), 문홍운(文弘運), 이중훈(李重勳) 등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였다. 1632년 11월 부사정 양직당(養直堂)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부사집(浮査集)』
- 『사마방목(司馬榜目)』
- 『순암문집(順菴文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術)』
단행본
- 남명학연구원, 『부사 성여신』(예문서원, 2015)
논문
- 김종구, 「부사 성여신의 유람을 통해 본 은일관 및 경세관과 그 의미」(『우리말글』 76, 우리말글학회, 2018)
- 최석기, 「成汝信의 「遊頭流山詩」에 대하여」(『남명학연구』 49,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1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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