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허 휴정(1520~1604)은 태고(太古) 법통의 적전(嫡傳)을 잇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고승이다. 그는 명종 대에 승과에 급제한 후 선교양종의 판사를 지냈고 1592년 임진왜란 때 8도 도총섭으로 의승군을 일으켰다. 휴정은 조선 후기 최대 계파인 청허계의 조사로서 간화선(看話禪) 우위의 선교겸수를 주창하면서 선, 교, 염불을 종합한 삼문수행 체계의 틀을 제시하였다.
청허 휴정의 저술로는 『삼가귀감(三家龜鑑)』 외에도 『청허당집(淸虛堂集)』, 『선가귀감(禪家龜鑑)』, 「선교결(禪敎訣)」, 「선교석(禪敎釋)」, 「심법요초(心法要抄)」 등이 있다.
『삼가귀감』은 1928년 조선불교중앙교무원에서 간행한 1책의 목판본이다, 간년 미상의 상 · 중 · 하 3권 1책으로 이루어진 목판본도 전하여지고 있다.
책의 시작 부분에는 청허 휴정의 화상(畫像)과 자찬(自讚) 그리고 1564년(명종 19) 휴정이 쓴 「선가귀감서(禪家龜鑑序)」가 나온다. 그 뒤로 조선불교중앙교무원본은 유교, 도교, 불교의 순으로 진행되며, 간년 미상의 3권본도 권상 유교, 권중 도교, 권하 불교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먼저 유교 부분에서는 여러 경전에 나오는 귀감이 될 만한 주요 개념과 그에 대한 역대 학자들의 주석을 인용하여 기술하였다. 『논어』의 천(天), 『서경』의 중도(中道), 『중용』의 성(性) · 도(道) · 교(敎), 『주역』의 계구(戒懼)와 신독(愼獨) 등을 다루고 있다. 휴정은 『중용』의 경우 성 · 도 · 교로 다르게 표현하지만 이는 모두 본체와의 작용을 가리킨 것이니, 따라서 이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전해받은 마음의 법이라고 하였다. 또 욕심을 줄이고 말을 삼가며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마음가짐을 거울과 저울처럼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도교 부분에서는 『장자』 및 『도덕경』의 내용을 중심으로 천 · 지 · 인 삼재의 본체인 도와 그 작용인 덕, 진인(眞人)과 양생, 천도와 인도, 안빈낙도(安貧樂道), 겸양(謙讓)과 하심(下心), 무극의 도리 등에 대해 서술하였다. 휴정은 도를 얻은 사람을 가난이나 부에 상관없이 그 너머를 추구하고 즐기는 사람이라 하였다.
불교 부분은 휴정의 주저인 『선가귀감(禪家龜鑑)』 가운데 선과 교에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옮겨온 것이다. 이 부분은 논해(論解)와 논행(論行)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여기서 휴정은 선과 교의 겸수, 입문으로서 교학, 선의 우위를 말한다. 또한 지해(知解)를 타파하는 것이 선 수행의 요체임을 강조하였다. 휴정의 『선가귀감』은 원래 선과 교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수행 방안을 제시한 책으로 선종 불교의 중요한 지침서이다. 『선가귀감』에서 휴정은 간화선 우위의 선교겸수 방안을 제시하였고 선, 교, 염불을 아우르는 삼문수행의 틀을 마련하여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책의 말미에는 휴정은 “유교는 뿌리를 심고 도교는 뿌리를 배양하며 불교는 뿌리를 뽑는다”라는 옛말에서 그 순서를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지금의 초학자를 위해 유교 · 도교 · 불교의 세 문호를 열어 서로 통하게 한다고 끝을 맺는다. 휴정은 『삼가귀감』에서 유가의 천(天)과 도가의 곡신(谷神)을 불교의 일물(一物) 또는 마음으로 회통(會通)시켜 삼교(三敎)를 아우르고자 한 것이다.
조선 초기 함허 기화(涵虛己和, 1376∼1431)는 자신의 저서 『현정론(顯正論)』에서 유교의 오상(五常)과 불교의 오계(五戒)를 대비시켜 유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에서 유교 · 도교 · 불교 삼교의 도는 모두 마음에 근본을 두며, 유교는 심(心), 도교는 기(氣), 불교는 성(性)을 위주로 한다고 설명하였다. 함허 기화의 뒤를 이어 청허 휴정은 일심을 매개로 삼교의 일치를 주장하였다. 한편 불교 안에서는 부처가 마음을 전한 것이 선이고 그것을 말로 나타낸 것이 교임을 강조하는 선교겸수를 주장하였다.
『삼가귀감』은 조선 전기 불교계의 삼교일치론(三敎一致論) 및 회통론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으로 청허 휴정의 시대 인식과 삼교에 대한 평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