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6세기, 승려 영허(暎虛, 1541~1609)가 지은 불교 소설.
서지사항
내용
구도 생활에 전념한 끝에 능가(楞迦) 법왕봉 아래 묘적암(妙寂庵)을 짓고, 영조(靈照) · 영희(靈熙) 등과 함께 수도에 힘썼다. 그런 뒤 세 사람은 문수도량인 오대산으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 도중 두릉(杜陵)의 구무원(仇無怨)의 집에서 잠시 머물며 법문을 가르쳤다. 주인에게 묘화(妙花)라는 딸이 있었는데, 부설의 설법을 듣고는 죽기를 한하고 그와 평생을 같이 하려 하였다.
출가한 몸인 부설로서는 애욕에 미혹될 처지는 아니었으나, 자비 보살의 정신으로 묘화와 혼인하고 머물러 살게 되었다. 영조와 영희는 파계를 안타까워하며 부설을 남겨두고 오대산으로 떠났다. 세속에 머물러 수도하는 15년 동안 부설은 등운(登雲) · 월명(月明) 남매를 두었다. 두 자녀를 부인에게 맡기고 아프다며 홀로 수도에 전념하여 5년 만에 크게 깨달았다.
옛 벗 영조 · 영희가 오랜 수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부설을 찾아왔다. 세 사람은 서로 공부의 숙련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물병 세 개를 달아 놓고 각자 하나씩 쳤다. 두 벗의 병은 깨어지면서 물이 흘러내렸으나 부설의 병은 깨졌지만 물은 그대로 공중에 달려 있었다. 속세에 머물러 수도한 부설의 깨달음이 출가 수도한 두 벗을 앞질렀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부설은 선악(仙樂)이 울리는 가운데 입적하였다. 두 자녀도 수도하여 열반하였고, 아내 묘화는 110세를 누렸다. 산문의 석덕(碩德)들은 두 자녀의 이름으로 암자를 지었고, 지금까지 등운암과 월명암으로 불려온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원전
- 「부설거사전(浮雪居士傳)」(『소호당집(韶濩堂集)』)
단행본
- 김태준, 『증보조선소설사(增補朝鮮小說史)』(학예사, 1939)
- 김태흡, 『부설거사』(불교시보사, 1936)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신문관, 1918)
- 황패강, 『신라불교설화연구』(일지사, 1975)
논문
- 김승호, 「16세기 승려작가 영허 및 <부설전>의 소설사적 의의」(『고소설연구』 11, 한국고소설학회, 2001)
- 이미숙, 「<浮雪傳>의 구도(構圖)와 선적(禪的) 체계 연구」(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 오대혁, 「<부설전>의 창작연원과 소설사적 의의 」(『어문연구』 47, 어문연구학회, 200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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