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위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의빈부(儀賓府)에 두었던 정3품 당상관의 봉작명.
제도/관직
설치 시기
1466년(세조 12)
폐지 시기
1910년
소속
1466년(세조 12)
내용 요약

부위(副尉)는 조선시대에 의빈부(儀賓府)에 두었던 정3품 당상관의 봉작명이다. 부위는 왕세자의 적녀(嫡女)인 군주(郡主)의 남편에게 처음 수여하는 관직이었다. 조선 건국 직후에는 군(君)으로 봉작되었으나 1466년(세조 12), 의빈부 개편과 함께 부빈(副賓)으로 봉작되었다. 이후 『경국대전』 당시에는 부위로 확립되었다. 1910년, 조선의 국권이 피탈됨과 함께 부위 역시 폐지되었다.

정의
조선시대, 의빈부(儀賓府)에 두었던 정3품 당상관의 봉작명.
설치 목적

의빈부에 속한 관직이다. 의빈부는 왕실의 사위인 주1를 관리하는 관서이다. 첨위(僉尉) 이상의 관직은 왕실의 사위에게 직접 제수하였다. 왕실의 사위는 국왕과 세자의 사위를 말하는데 관직에 나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설치하였다.

한편, 조선 전기에는 토관직(土官職)에 부위를 제수하기도 하였다. 토관직은 평안도, 함경도 등 북방과 제주도 등 변방 출신을 대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직이다. 토관직 가운데 정6품의 도감사부위(都監司副尉) 등의 관직이 있었지만 15세기말부터 모두 사라졌다.

임무와 직능

실제 직무가 없고 녹봉만을 받는 예우직이었다. 왕세자의 주2군주와 혼인한 사람에게 처음 수여하는 관직이다.

변천사항

조선이 건국된 직후 왕실의 사위는 부마라 하고 군(君)으로 봉작하였다. 정종 때, 군 대신에 후(候)로 봉작하였다가 태종 대에 다시 군으로 봉작하였다. 처음에는 주4를 두어 부마와 공신을 관리하였는데, 1444년(세종 26)에 주3를 독립하여 설치하였다.

1466년(세조 12)에 대대적인 관제 개편 당시 부마부를 의빈부로 개칭하였다. 이때 1품의 의빈(儀賓), 2품의 승빈(承賓), 정3품의 부빈(副賓), 3품의 첨빈(僉賓) 등 4가지로 봉작하였다. 당시 군주의 남편은 부빈에 봉작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후 다시 변경되어서 『경국대전』에는 (尉), 부위(副尉), 첨위(僉尉)의 3가지로 봉작하는 것이 규정되었다.

1869년(고종 6), 의빈의 품계가 개정되어서 부위 역시 종1품으로 격상되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근대 관제로 개편될 당시에 의빈부를 의빈원(儀賓院)으로 개칭하였다. 관직은 그대로 두었고 부위의 품계만 정1품으로 다시 한번 승급시켰다. 1910년, 조선이 국권을 피탈당한 후 의빈원 역시 이왕직으로 통폐합되면서 부위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육전조례(六典條例)』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논문

한충희, 「조선 초기 육조속아문연구 2: 관직의 정비를 중심으로」(『계명사학』 12, 계명사학회, 2001)
신명호, 「조선 초기 왕실 편제에 관한 연구: ‘의친제’의 정착을 중심으로」(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0)
남지대, 「조선 초기 예우아문의 성립과 정비」(『동양학』 24-1,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1994)
한충희, 「정치구조의 정비와 정치기구」(『한국사』 23, 국사편찬위원회, 1994)
한충희, 「조선 초기 육조속아문의 행정체계에 대하여」(『한국학논집』 10,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83)
주석
주1

임금의 사위.    우리말샘

주2

정실이 낳은 딸.    우리말샘

주3

조선 시대에, 부마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 세조 12년(1466)에 의빈부로 고쳤다.    우리말샘

주4

조선 초기, 부마(駙馬)들에 관계되는 일을 맡아 보던 관아. 세종(世宗) 즉위년(1418)에 공신제군부(功臣諸君府)를 고친 이름이다.    바로가기

집필자
나영훈(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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