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은 임진왜란 때의 의승장 사명 유정(四溟惟政)의 전란 관련 기록을 모아, 1739년에 문손 태허 남붕(太虛南鵬)이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1738년 유정을 제향하는 밀양 표충사가 사액사우로 지정된 것과 관련이 있다. 이를 주도하여 표충사 도총섭이 된 남붕이 유정 관련 기문을 모아 이 책을 펴냈으며, 유정이 일본군 진영에 들어가서 보고 들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와 상소문, 일본 승려에게 보낸 편지, 표충사 관련 기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인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은 호를 송운(松雲)이라고도 했으며 청허계 사명파의 조사이다. 경상도 밀양 출신으로 1561년 승과 급제 후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법맥을 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원도에서 의승군을 일으켰고 8도 도총섭으로서 전투, 산성 수축, 군량 조달 등을 총괄했다. 1604년에는 왕명으로 일본에 가서 에도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외교적 교섭을 했다.
저서로는 이 책과 함께 시문집 『사명당대사집』이 있다. 편자인 태허 남붕(太虛南鵬, ?∼1777)은 편양파 설송 연초(雪松演初, 1676∼1750)의 제자이지만 편양파의 선과 사명파의 교를 모두 통합했다는 법맥 인식을 내세우며 유정의 5세 법손임을 표방했다. 1738년 표충사를 사액사우로 지정받고 도총섭이 되었으며 1739년 유정의 전쟁 관련 기문을 모은 『분충서난록』을 간행했다.
유정의 5대 법손인 태허 남붕이 밀양 표충사 사액 과정에서 그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유정의 유고를 모아 출간하게 되었다. 남붕이 원래 ‘골계도(滑稽圖)’라고 이름했지만 서문을 쓴 김재로가 ‘분충서난록’으로 서명을 바꾸고 신유한에게 교정과 산삭을 의뢰하게 했다. 신유한은 교감을 보면서 평석을 붙이고 발문도 썼다.
본서는 적진을 탐지한 보고서 및 상소문 7편, 일본 승려에게 보낸 서한 4편,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진영에 가서 담판한 내용과 적진의 허실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청정영중탐정기(淸正營中探情記)」에는 당시 화친의 조건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적의 정황을 보고한 「별고적정(別告賊情))」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명나라 심유경(沈惟敬) 사이의 화친 조약 체결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던 가토와의 대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명나라 제독이었던 유정(劉綎)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왕알유독부언사기(往謁劉督府言事記」도 주목된다.
상소문 가운데 「토적보민사소(討賊保民事疏)」는 승군을 모아 활동한 사실과 정세 분석, 보국 책략이 주된 내용이고, 「을미상소언사(乙未上疏言事)」에서는 민력(民力)을 키우고 인사(人事)에 힘쓸 것을 주장하고 있다. 편지글은 승태(承兌) · 원길(元佶) · 현소(玄蘇) 등 일본 승려에게 보낸 것이다.
부록에서는 유정과 관련된 기록을 『지봉유설(芝峯類說)』 등 여러 문헌에서 발췌하여 실었는데, 유정을 추모하기 위한 각종 글, 고위 관료와 명유들이 지은 시문 등이 수록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에 건너갈 때 전송한 시(詩) 19편, 만사(挽詞) 1편, 진찬(眞贊) 3편이 실려 있는데, 이항복(李恒福), 이덕형(李德馨), 이정구(李廷龜), 이산해(李山海), 이수광(李晬光), 이식(李植), 권율(權慄) 등의 전별시(餞別詩)가 들어있다. 이 밖에 표충사 관련 기문도 말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임진왜란 때 8도 도총섭으로서 의승군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적진을 탐문하고 외교에도 공을 세운 사명 유정의 활약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더욱이 당시 조선을 둘러싸고 펼쳐진 명과 일본의 외교전과 강화 조건의 허실, 일본군의 상황과 조선에 대한 인식, 조선 사회의 긴박한 현실과 민심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의 보고이다. 또 유정을 향사하는 밀양 표충사의 사액사우 지정과 이 책의 간행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승 활동의 추숭과 현창, 계승 의식에 관해서도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