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은 청허계 사명파의 조사이다. 유정은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호는 송운(松雲) 또는 종봉(鍾峰)이다.
유정은 직지사(直指寺)에서 신묵(信黙)에게 출가하였다. 그는 1561년 승과에 급제한 후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법을 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정은 강원도에서 의승군을 일으켰으며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되었다. 유정은 왜군과의 전투뿐 아니라 산성을 수축하고, 군량을 조달하는 등 전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승군을 지휘하며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았다. 1604년에는 왕명으로 일본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외교적 교섭을 진행하였다. 유정은 선과 교에 모두 정통했으며 송월 응상(松月應祥, 1572∼1645) 등 많은 제자를 두었다. 1610년 해인사(海印寺)에서 입적하였다.
유정과 관련된 문헌으로는 그의 시문을 모은 본서 『사명당대사집(泗溟堂大師集)』, 유정과 관련된 역사서인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이 있다.
『사명당대사집』의 편자인 혜구(惠球)는 유정의 문도(門徒)로 스승 유정이 입적한 후 문집 간행을 주관하였다.
『사명당대사집』은 7권 1책(2책)의 목판본이다. 『사명당집(四溟堂集)』이라고도 한다. 혜구가 편찬한 최초의 목판본에는 1612년에 허균(許筠)이 쓴 「석장비명병서(石藏碑銘並序)」와 의승장 뇌묵 처영(雷默處英)이 쓴 발문이 들어 있다. 한편 성일이 간행한 중간본에는 1640년 중관 해안(中觀海眼)이 쓴 유정의 행적이 추가되어 있다.
『사명당대사집』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는 사(辭) 6편 9수와 고시(古詩) 8편 9수, 권2에는 오언 율시(五言律詩) 19편 20수, 권3에는 칠언 율시(七言律詩) 42편 44수, 권4에는 오언 절구(五言絕句) 8편 10수와 칠언 절구(七言絕句) 85편 102수가 실려 있다. 권5에는 선게(禪偈) 27편 35수, 권6에는 잡문(雜文) 19편, 권7에는 잡체시(雜體詩) 68편 103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문집에는 권1에 「문용정서지통곡이작(聞龍旌西指痛哭而作)」 · 「증송암(贈松庵)」, 권2에 「송욱산인환해서(送昱山人還海西)」 · 「숙복주성루(宿福州城樓)」, 권3에 「동화사상방문분야종(桐華寺上房聞分夜鐘)」 · 「증부휴자(贈浮休子)」, 권4에 「기축횡리역옥(己丑橫罹逆獄)」 · 「증지호선사(贈智湖禪師)」, 권5에 「증영운장로(贈靈雲長老)」 · 「일위도강(一葦渡江)」 등 많은 시가 실려 있다. 수록된 시는 증시(贈詩) · 화답시(和答詩) · 기행시(紀行詩) · 회고시(懷古詩)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화두를 들고 의심을 타파하는 선 수행과 그 기풍이 담긴 시가 적지 않으며, 『장자(莊子)』를 인용하는 등 도교적 색채가 드러나는 시도 있다.
권6에는 스승 휴정과 관련된 글, 불상 · 전각의 조성을 위한 권선문(勸善文) 등이 실려 있다. 그 중 「원준장로법화후발(圓俊長老法華後跋)」 · 「화엄경발(華嚴經跋)」 · 「갑회문(甲會文)」 등은 교학과 사찰계를 다룬 내용으로 주목된다. 「법화후발」은 성인과 범부(凡夫)의 태생적 차별을 거부하며 어리석은 사람도 일념회기(一念回機)하면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유정의 사상이 드러나는 시이다. 「화엄경발」에서는 "화엄(華嚴)의 진리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 모든 가르침 가운데 으뜸이다. 이 진리로 인해 천지와 산수가 자연스럽게 있고 … 국왕이 어질고 백성은 충성을 다하며 … 서로 사이좋게 즐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비로자나불이 아닌 것이 없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보현보살이 닦은 그 길 그대로이다"라고 하였다. 「갑회문」에서는 유가의 본분과 마찬가지로 승가의 본분도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유정의 생각이 드러난다.
권7에는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백성을 구하러 가는 길에 지은 「유죽령(踰竹嶺)」 · 「증일본원이교사(贈日本圓耳敎師)」 등의 시가 실려 있다. 「증일본원이교사」의 원이는 일본 교토[京都] 고쇼지[興聖寺]의 개산조 엔니 료젠(円耳了然, 1559∼1619)을 의미한다. 료젠은 1605년 2월에 『자순불법록(諮詢佛法錄)』을 지었는데 이 책은 선종의 가르침 및 수행의 요체, 임제종(臨濟宗)의 종지에 대한 10개의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다. 료젠은 당시 교토에 와 있던 유정에게 “다행히 만 리 길을 가지 않고서도 이곳에서 대혜 종고(大慧宗杲)의 후손인 대사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숙세(宿世)의 인연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을 기약할 수 있었겠습니까. 큰 자비를 내려서 지금 법을 전수해주신다면 그 덕이 정말로 한량 없겠습니다”라고 하며 책의 내용에 대한 자문과 판정을 구했다. 유정은 료젠에게 무염(無染)이라는 호와 허응(虛應)이라는 자를 지어줄 정도로 그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사명 유정은 임진왜란 때 의승장으로 활동하며 많은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정작 그의 불교 사상을 담은 책은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명당대사집』은 비록 시를 중심으로 편찬되었으나, 유정이 가졌던 선의 기풍과 교학 사상, 정토에 대한 관념까지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가치가 높다.
한편 『사명당대사집』에 수록된 허균의 「석장비명」에는 고려시대의 법안종(法眼宗), 조동종(曹洞宗), 임제종의 전통이 정리되어 있다. 이 글은 특히 고려 말의 나옹 혜근(懶翁惠勤)으로부터 휴정까지 이어지는 임제종의 법통을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