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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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국가의 회계 업무에 종사한 전문직 하급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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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국가의 회계 업무에 종사한 전문직 하급 관직.
내용

조선시대는 산원과 산학(算學)이 모두 호조(戶曹)에 소속되어 그 양성·시험·임용·근무가 모두 자체에서 이루어졌다. 산원의 정원은 초기는 30인이었으나 중기 이후 60인으로 증원되었다. 그리고 산학의 생도 역시 초기 15인에서 중기 61인으로 늘어났다.

산원들에게 배정된 관직은 최고직이 종6품 산학교수(算學敎授) 1인, 무록관인 별제(別提) 2인, 종7품 산사(算士) 1인, 종8품 계사(計士) 2인, 정9품 산학훈도(算學訓導) 1인, 종9품 회사(會士) 1인이었다.

그 중 별제·계사·회사의 정원은 중기 이후 1인씩 감원되었다. 이 밖에 비정규직으로 실입(實入) 2인, 임관(任官) 4인, 행수관(行首官) 및 상·중·하의 장무관(掌務官) 각 1인, 관서관향계사(關西管餉計士) 1인, 강계세삼영래계사(江界細蔘領來計士) 1인이 임명되고 있었다.

이들 중 산학교수·산학훈도·별제는 각기 임기 30개월의 정직이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6개월씩 돌아가며 녹봉을 받는 체아직(遞兒職)이었다. 이들은 근무일수 514일마다 1계급씩 진급되어 종6품에 이르면 복무의무가 끝났다.

그러나 계속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자는 근무일수 900일마다 1계급씩 진급되어 정3품까지 오를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지위는 고려시대보다 훨씬 향상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호조의 각 부서에 배정되어 근무하였다. 즉 회계사(會計司)에 5인, 판적사(版籍司)·지조색(支調色)·판별방(版別房)·해유색(解由色)에 각 6인, 세폐색(歲幣色)에 4인, 작미색(作米色)에 5인, 수공안색(收貢案色)에 10인, 응판색(應辦色)에 4인, 목물색(木物色)·금은색(金銀色)·주전소(鑄錢所)에 각 2인이었다. 그리고 선혜청에 3인, 균역청과 병조에 각 2인, 양향청·금위영·어영청에 각 1인씩 파견 근무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만기요람(萬機要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조선초기(朝鮮初期)의 기술관(技術官)과 그 지위(地位)」(이성무, 『혜암유홍렬박사화갑기념논총』, 1971)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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