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은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는 데 쓰이는 연장이다. 형태나 쓰임에 따라 둥근삽·각삽·개양삽·부삽·꽃삽·야전삽 등으로 나뉜다. 둥근삽은 둥그런 날로 땅을 판다. 각삽은 날 끝이 넓적하며 양쪽을 위쪽으로 조금 휘어 흙이나 곡물을 옮긴다. 개양삽은 긴 네모꼴이고 끝이 곧아 소금을 퍼담는다. 부삽은 아궁이나 화로의 재를 치거나 숯불을 담아 옮긴다. 꽃삽은 흙손만한 작은 삽으로 모종삽이라고도 한다. 야전삽은 군인들이 쓰는 개량삽이다. 1970년대에 들어와 굴삭기가 널리 보급되어 효용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중국의 왕정(王禎)은 1313년에 낸 『농서(農書)』에서 삽(臿)을 설명하는 가운데 “『방언』에 따르면 연(燕)나라 동북의 조선 열수 일대에서는 이를 조(鍤)라 한다(方言云 燕之東北 朝鮮洌水之間謂之鍤).”라고 적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연나라 동북지방에서 살았고 『방언』의 저자 양웅(揚雄)은 1세기 무렵의 사람이므로 우리 민족은 적어도 1세기 전부터 삽을 써왔음을 알 수 있다.
권근(權近)은 그의 『양촌문집(陽村文集)』에서 “마땅히 베어야 할 풀은 삽으로 밀어야 한다(草之可芟者鍤之).”라고 적었으며, 신숙주(申叔舟)의 『보한재집』에도 “우물을 만들려고 삼태기(鍤)와 삽(鍤)을 갖추고 파기 시작하였다.”라는 서술이 보인다. 1527년(중종 22)에 나온 『훈몽자회』에서 ‘鍤’를 삷 쵸, ‘鍤’을 삷 삽이라고 새겼다.
홍만선(洪萬選)은 『산림경제』에서 “또는 반 년 뒤에 대나무 뿌리가 1∼2척으로 자라면 그 뿌리를 삽으로 자르고 흙으로 덮어두라(或半年去竹本一二尺以鍤斷其根仍以土鍤之.)”라고 하였다. 서호수(徐浩修)가 지은 『해동농서(海東農書)』의 그림을 통해서 18세기 중엽의 삽 모양을 짐작할 수 있다. 긴 자루에 끝이 반듯하고 네모난 날을 박았으며, 날이 힘을 더 받도록 하려고 굽통의 일부분을 날 가운데까지 이어 놓았다. 자루 끝에 손잡이가 달리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이것은 땅을 파기보다 거름이나 흙 따위를 다른 곳으로 떠 옮기거나 곡식에 섞인 검불을 날리기 위하여 공중으로 흩뿌릴 때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나 쓰임에 따라 둥근삽 · 각삽 · 개양삽 · 부삽 · 꽃삽 · 야전삽 등으로 나눈다. 둥근삽은 날 끝이 둥그레 한 삽으로 땅을 파는 데 쓰며, 요즈음에는 날끝을 단단하게 하려고 철을 덧댄 것이 나왔다.
각삽은 날 끝이 넓적하며 담긴 것이 흘러떨어지지 않도록 좌우 양쪽을 위쪽으로 조금 휘어 놓았다. 흙이나 곡물 따위를 떠 옮기는 데 쓴다. 개양삽은 소금밭에서 소금을 퍼담는 데 쓰는 삽으로 날은 긴 네모꼴이고 끝이 곧다. 이와 비슷하게 날이 판판한 삽은 시멘트를 비비는 데 많이 쓴다.
부삽은 아궁이나 화로의 재를 치거나 숯불이나 불을 담아 옮기는 데 쓰는 조그마한 삽이다. 쇠붙이로 네모가 지거나 둥글게 만들되 바닥이 좀 우긋하고 긴 자루가 달려 있다. 화로의 재를 눌러 덮기 위하여 끝이 네모나고 자루의 한 끝에 꼭지를 붙인 것도 부삽이라 한다. 꽃삽은 어린 식물을 옮겨 심을 때 쓰는 흙손만한 작은 삽으로 모종삽이라고도 한다.
야전삽은 군인들이 가지고 다니며 쓰는 개량삽으로 날은 작으며 자루에 접어서 붙인다. 한 끝에 꼬챙이가 달려서 작은 돌멩이 따위를 후벼 내며 반으로 접어서 괭이로 쓰기도 한다. 이 밖에 삽자루의 목에 두 개의 줄을 매고 두 사람이 각기 좌우에서 당기고 다른 한 사람은 자루를 쥐고 흙덩이 따위를 멀리 던지기도 하는데 이를 삽가래라고 한다.
땅을 파는 곡괭이와 흙을 떠내는 삽은 바늘과 실처럼 함께 쓰여 왔으나, 1970년대에 들어와 굴삭기가 널리 보급되어 땅을 파고 흙을 떠내는 일을 모두 해냄으로써 그 효용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요즈음의 삽은 굴삭기를 쓸 수 없는 좁은 땅에서나 제구실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