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의 구성 요건은 발신인(發信人)·수신인(受信人)·용건(用件) 등 세 가지이다. 일반적인 문장에 비교해서 말하기 대신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특정한 독자 즉 수신인이 반드시 지정되고, 특정한 독자에 대한 위치 관계에 의해서 적절한 예법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서간은 여타 문장과는 다른 특정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서간과 비슷한 명칭으로는 서찰(書札) · 간찰(簡札) · 서자(書字) · 서한(書翰) · 서함(書函) · 척독(尺牘) · 간독(簡牘) · 편저(片楮) · 소식(消息) · 수찰(手札) · 신서(信書) · 안신(雁信) · 어안(魚雁) 등 한자어로 된 이칭이 무수히 많다. 원래 간(簡) · 찰(札) · 독(牘)은 서간을 쓰는 데에 사용된 재료에 따라서 붙여진 명칭으로, 대나무에 쓴 것을 간, 나무판자에 쓴 것을 독 또는 찰이라 하였다. 또 척독이라고 하는 것은 독의 길이가 1척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우리 고유어로는 우(유)무 · 글월 · 편지 등이 있다.
종류는 표기문자(表記文字)에 의해서 순 한문 또는 이두문을 섞어서 쓰는 ‘한문 서간’과 순한글 또는 한자를 섞어서 쓴 ‘언간(諺簡)’으로 구분된다. 종래 한글 편지를 ‘내간(內簡)’으로 호칭하는 일이 있었으나, 그것은 ‘언간’ 안에 포함되는 하위 개념이다.
내용에 의해서 문안(問安) · 평신(平信) · 하장(賀狀) · 위장(慰狀) 등으로 구분되며, 용도에 의해서 생활 수단인 ‘실용 서간(實用 書簡)’과 문학 수단인 ‘문예 서간(文藝 書簡)’으로도 구분된다.
특히 전근대의 한문 서간 중에는 수필과 평론의 구실을 한 문학 작품의 교환 수단으로 활용한 까닭에 ‘한묵(翰墨)’이라는 명칭도 생겼다. 이와 같이 서간은 문학의 원형(原型)이었고 따라서 문학성이 짙은 까닭에 ‘서간 문학’ 또는 ‘서간체 문학’이라는 영역도 파생하였다.
대략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한문이 전래한 뒤로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한문 서간뿐이었지만, 15세기 훈민정음 반포 이후로는 언간이 병행하여 서간이 질적 · 양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언문일치(言文一致)’라는 근대 문화의 추세에 따라 한문 서간은 후퇴하고 국문 편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현대의 편지글 중에는 이전부터 오랫동안 영향을 받아온 한문 서간의 색채,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일본 서간의 색채가 아직도 더러 숨어 있는 상태이다.
현존하는 한문 서간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신라의 녹진(祿眞)이 쓴 「상각간김충공서(上角干金忠恭書)」 1편과 최치원(崔致遠)이 당나라에서 쓴 「답절서주사공서(答浙西周司空書)」 등 32편이 있다. 그 뒤로 고려 및 조선시대 명현들의 서간이 많은 문헌과 그들의 문집 속에 전하고 있어서 그 문헌적 가치는 매우 크다.
언간에 대해 일반 문헌과 사서(史書)를 통해서 보면, 세종 당시부터 궁중과 민간을 불문하고 정치와 생활상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현존하는 실증 자료로서는 정철(鄭澈)과 그의 어머니 안씨(安氏) 사이에 주고받은 몇 편의 필적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 뒤로 선조 · 인목왕후(仁穆王后) · 김성일(金誠一) · 윤선도(尹善道) · 송시열(宋時烈) · 김정희(金正喜) 등을 비롯하여, 16세기 중반 20세기 초반 왕실·사대부·서민이 작성한 1천 5백 건에 가까운 한글 편지가 전하고 있다.
한문 서간이 중국의 서간에 비하여 특색이 적은 것과는 달리, 이들 언간은 민족의 생활상을 민족의 고유 문자로 표현한 것이므로, 언어와 문학의 측면뿐만 아니라 한국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간의 작성 방법을 기술한 교본, 서간의 교양을 돕기 위한 재래의 문헌으로서는 모범이 되는 서간을 모은 『서간집(書簡集)』, 편지의 격식과 예문을 실은 『간독(簡牘)』, 한글 편지를 대상으로 삼은 『언간독(諺簡牘)』, 방각본(坊刻本) 간찰 교본 등이 주1 또는 사본(寫本)으로 많은 종류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