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전기, 문하시중·중대광·삼중대광 내사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1022년(현종 13) 딸이 숙비(淑妃)가 되자 중추사우산기상시(中樞使右散騎常侍)에 올랐다. 1023년(현종 14) 참지정사(叅知政事)로, 1024년(현종 15) 서북면행영도통(西北面行營都統)으로, 1027년(현종 18) 내사시랑(內史侍郞)으로, 1029년(현종 20) 판서경유수사(判西京留守事)로, 1030년(현종 21) 문하시랑동평장사판상서이부사(門下侍郎同平章事判尙書吏部事)로 각각 임명되었다. 1031년(덕종 즉위년) 검교태사(檢校太師)로, 같은 해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왕가도(王可道)와 함께 거란으로 하정사(賀正使)의 파견을 중지하자고 주장하여 관철하기도 하였다.
1041년(정종 7) 궤장(几杖)을 받고 중대광(重大匡)이 되었다. 이듬해 두 번 임금에게 글을 올려 벼슬을 내놓고 물러가기를 원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서눌이 병들어 지장사(地藏寺)에서 머물렀는데, 왕이 우승선(右丞宣) 김정준(金廷俊)을 보내어 문병하였고, 어의(御衣) 2벌, 곡식 1,000석, 말 2필을 사원에 시주하여 복 받기를 빌게 하였다. 병이 위독해지자 임금의 문병을 받고, 삼중대광내사령(三重大匡內史令)에 임명됨과 함께 자손에게 영업전(永業田)을 내렸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 연구』 (일지사, 1990)
주석
-
주1
: 원목왕후 서씨(元穆王后徐氏)
-
주2
: 궤장연(几杖宴) 때에 임금이 나라에 공이 많은 70세 이상의 늙은 대신에게 하사하던 궤(几)와 지팡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