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눌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고려 전기, 문하시중·중대광·삼중대광 내사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간경(簡敬), 원숙(元肅)
인물/전통 인물
  • 본관이천(利川)
  • 사망 연도1042년(정종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문하시중, 중대광, 삼중대광 내사령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신안식 (가톨릭대학교 연구교수, 고려시대사)
  • 최종수정 2024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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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서눌은 고려 전기에 문하시중, 중대광, 삼중대광 내사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996년(성종 15)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6대 성종~10대 정종까지 정치의 중심에서 활약하였다. 이에 따라 서눌은 할아버지 서필, 아버지 서희와 더불어 최고 관직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3대가 모두 종묘(宗廟)에 배향되었다.

정의

고려 전기, 문하시중·중대광·삼중대광 내사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이천(利川). 할아버지가 삼중대광태사내사령(三重大匡太師內史令) 서필(徐弼), 아버지가 태보사령(太保內史令) 서희(徐熙)이다. 서눌은 할아버지 서필, 아버지 서희와 더불어 최고 관직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3대가 모두 종묘(宗廟)에 배향되었다.

주요 활동

서눌은 996년(성종 15) 최섬(崔暹)이 주관한 과거에서 곽원(郭元) 등과 함께 갑과(甲科)에 급제하였다. 1016년(현종 7) 중승(中丞)이 되고, 이듬해 형부시랑(刑部侍郎)이 되어 송(宋)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1018년(현종 9)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를 거쳐 국자좨주지이부사(國子祭酒知吏部事)를 지냈다.

1022년(현종 13) 딸이 숙비(淑妃)가 되자 중추사우산기상시(中樞使右散騎常侍)에 올랐다. 1023년(현종 14) 참지정사(叅知政事)로, 1024년(현종 15) 서북면행영도통(西北面行營都統)으로, 1027년(현종 18) 내사시랑(內史侍郞)으로, 1029년(현종 20) 판서경유수사(判西京留守事)로, 1030년(현종 21) 문하시랑동평장사판상서이부사(門下侍郎同平章事判尙書吏部事)로 각각 임명되었다. 1031년(덕종 즉위년) 검교태사(檢校太師)로, 같은 해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왕가도(王可道)와 함께 거란으로 하정사(賀正使)의 파견을 중지하자고 주장하여 관철하기도 하였다.

1041년(정종 7) 궤장(几杖)을 받고 중대광(重大匡)이 되었다. 이듬해 두 번 임금에게 글을 올려 벼슬을 내놓고 물러가기를 원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서눌이 병들어 지장사(地藏寺)에서 머물렀는데, 왕이 우승선(右丞宣) 김정준(金廷俊)을 보내어 문병하였고, 어의(御衣) 2벌, 곡식 1,000석, 말 2필을 사원에 시주하여 복 받기를 빌게 하였다. 병이 위독해지자 임금의 문병을 받고, 삼중대광내사령(三重大匡內史令)에 임명됨과 함께 자손에게 영업전(永業田)을 내렸다.

상훈과 추모

1042년(정종 8) 서눌이 죽자 국왕이 중광전(重光殿)의 행랑 아래에서 애도를 표하였고, 간경(簡敬)이란 시호를 내렸다. 후에 황주량(黃周亮)·최충(崔冲)·김원충(金元冲)과 함께 정종(靖宗)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1086년(선종 3) 정종(定宗)의 시호를 피하여 원숙(元肅)으로 고쳤다.

참고문헌

  • 원전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단행본

  • -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 연구』 (일지사, 1990)

주석

  • 주1

    : 원목왕후 서씨(元穆王后徐氏)

  • 주2

    : 궤장연(几杖宴) 때에 임금이 나라에 공이 많은 70세 이상의 늙은 대신에게 하사하던 궤(几)와 지팡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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