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판삼사사·도첨의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1343년(충혜왕 복위 4)에는 한양군(漢陽君) 한종유와 함께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공물(貢物)을 바치고 돌아왔으며, 1344년(충목왕 즉위년) 충목왕(忠穆王)이 즉위하자 첨의참리(僉議參理)가 되어 서연(書筵)에서 시강(侍講)하였다. 이어 찬성사(贊成事)를 거쳐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다. 1349년(충정왕 1) 충목왕이 죽자 왕자 왕저(王㫝: 뒤의 충정왕)를 시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와 즉위시킴으로써 추성선력익대정원공신판삼사사의창부원군(推誠宣力翊戴定遠功臣判三司事義昌府院君)에 봉해졌다.
왕이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곧 좌정승(左政丞)에 이어 우정승(右政丞)이 되었으며, 곧이어 정방제조(政房提調)를 겸직하게 되었다.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을 역임한 다음에, 1356년(공민왕 5) 전 호군(護軍) 임중보(林仲甫)가 충혜왕의 서자인 석기(釋器)를 추대하여 반란을 도모하다가 발각되자 이에 연루되어 사형을 받았다. 그가 정승 시절 원 황제가 보낸 축려(丑驢)가 어향(御香)을 들고 온 것을 국왕이 직접 맞이하는 것을 저지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으며, 축려가 채찍으로 그를 때리려 하자 말을 타고 도망을 갔다. 이 일로 사헌부(司憲府)가 총재(冢宰)로 치욕을 당했다고 탄핵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동문선(東文選)』 「전판삼사손자외진궐사구장(前判三司孫自外進闕賜鳩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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