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영천군수, 양주목사, 공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농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중앙으로 와서는 지평(持平)을 거쳐, 필선(弼善)이 되어 동궁(東宮) 뒤의 효종을 보도(保導)하였다. 여러 번 문 · 무의 시험을 관장했고 장령(掌令)을 거쳐 1649년 인조가 죽자 사성으로서 산릉감역(山陵監役)에 임명되었다. 그 뒤 승지 및 참의에 의망(擬望)되었으나 인척 관계에 있는 김자점(金自點)이 죄를 입어 축출되자 연안현감으로 나갔다.
김자점이 역모죄로 복주(伏誅)된 뒤 양주목사가 되었는데 역적의 가까운 친척을 관직에 둘 수 없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대사헌 홍무적(洪茂績)의 변론으로 논의는 그쳤으나 그 일로 끝내 벼슬은 크게 떨치지 못하였다.
뒤에 공주와 청주의 목사를 연이어 맡았는데 감사와 병사가 잇달아 표창을 건의할 정도로 정사를 잘 돌보았다. 지방관으로서 실무에 힘쓰고 개혁을 하되 급격히 하지 않아 힘들이지 않고 많은 일을 해서 감사 및 병사 · 방어사(防禦使) 등에 자주 천거되었으나 요로에 신속을 아는 사람이 없어 이루어지지 않았다.
7대조 신숙주(申叔舟)의 문집인 『보한재집(保閑齋集)』을 1644년에 개간, 보급하였다. 1655년(효종 6) 공주목사로 있을 때 『농사직설(農事直說)』의 간행본을 구하기 어려운 것을 한스럽게 여겨 당시의 달라진 속방(俗方)을 첨가하는 한편, 주희(朱熹)의 『권농문(勸農文)』 · 『금양잡록(衿陽雜錄)』 · 『사시찬요(四時纂要)』 등을 함께 묶어 『농가집성(農家集成)』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신속의 대표적인 업적이며, 17세기 농업기술을 연구하는 데 요긴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농가집성(農家集成)』
- 『송자대전(宋子大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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