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현여지승람(新昌縣輿地勝覽)』은 충청도 신창현(新昌縣)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에서 편찬하였다.
1책 6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0.1㎝, 가로 21.2㎝이다. 표제는 ‘신창현읍지(新昌縣邑誌)’이고, 권수제는 ‘신창현여지승람(新昌縣輿地勝覽)’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영조 연간에 조정에서는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 편찬을 위해 읍지상송령을 세 차례에 걸쳐 내렸다. 1757년(영조 33)과 1759년(영조 35), 1775년(영조 51)에 내렸는데, 이 읍지는 그중 최초의 관문(關文)을 따라 1758년(영조 34)에 편찬하였다. 내지에 ‘건륭이십삼년무인월일신창현여지승람(乾隆二十三年戊寅月日新昌縣輿地勝覽)’이라고 적혀 있는데, 건륭 23년 무인년은 1758년이며, 이 읍지의 편찬 연도를 알려 주는 단서이다.
지도는 첨부하지 않았다. 수록 항목은 사방경계(四方境界)로 시작하여, 건치연혁(建置沿革), 관원(官員), 군명(郡名), 성씨(姓氏), 산천, 성곽(城郭), 신증언(新增堰), 토산(土産), 누정(樓亭), 학교, 사묘(祠廟), 역원(驛院), 교량(橋梁), 불우(佛宇), 고적(古蹟), 객관(客館), 신증총묘(新增塚墓), 인물, 제영(題詠) 순으로 구성하였다.
기본적으로 1531년(중종 26)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항목 구성과 내용을 따르고 있다. 제언과 총묘 등의 항목을 새로 수록하였고, 기존 항목 중에서 토산과 사묘, 인물 내용은 모자란 내용을 덧붙여 추가하였다. 한편, 같은 영조 연간에 편찬된 『여지도서』와 달리 지도는 수록하지 않았다. 방리(坊里)와 형승(形勝), 풍속(風俗) 항목과 창고(倉庫),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봉름(俸廩), 군병(軍兵) 등 경제 · 재정과 관련한 다수의 항목이 빠져 있어 고을의 면리(面里) 정보와 경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인물 항목의 경우, 명현과 충신, 효자, 의사, 효부, 열녀 등으로 세분화하여 이름과 행적을 실었다. 또 별도의 제영 항목을 설정하여 명사들이 신창에 대해 읊은 시구를 수록하였다.
18세기 중후반 충청도 신창 지역의 역사와 지리 환경을 비롯해, 사회문화적 정보와 인적 · 문화적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