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군읍지(溫陽郡邑誌)』는 충청도 온양군(溫陽郡)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동 일대 및 탕정면 · 배방면 · 송악면 일부]에서 편찬하였다.
1책 10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0㎝, 가로 21.1㎝이다. 표제와 권수제 모두 ‘온양군읍지(溫陽郡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정확한 편찬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영종대왕(英宗大王)’, ‘영묘(英廟)’ 등을 언급하고 있어 최소한 정조 대 이후에 편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읍지에 기록된 호구(戶口) 수가 1789년(정조 13)의 조사 결과가 담긴 『호구총수(戶口總數)』 기록과 같고, ‘전부(田賦)’ 항목에 계축년(癸丑年)의 수치가 나오는데, 1789년에서 가장 가까운 계축년은 1793년(정조 17)이다. 따라서 이 읍지는 이로부터 멀지 않은 시점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지도는 첨부하지 않았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온천(溫泉),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 전부, 요역(徭役), 군액(軍額), 성지(城池), 공해(公廨), 창고(倉庫), 조적(糶糴), 학교, 단묘(壇廟), 정퇴서원(靜退書院), 명현재상분묘(名賢宰相墳墓), 불우(佛宇), 누정(樓亭), 제영(題詠), 도로, 교량(橋梁),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인물 순으로 구성하였다.
방리와 호구 항목에는 면리 구성은 물론, 관문을 기준으로 한 각 면에 속한 동리별 위치, 편호 및 남녀별 인구수를 자세히 기록하였다. 항목 끝에 기유년(己酉年)에 파악한 것으로 밝혀 놓았는데, 여기에서 기유년은 1789년으로 추정된다. 또 전부 항목에는 계축년의 한전과 수전의 토지 결수를 기록해 놓았는데, 이 시기는 1793년으로 짐작된다.
가장 주목되는 항목은 온천 항목으로, 온양온천의 위치와 규모는 물론 행궁(行宮)의 공간구성 요소까지 담고 있다. 또한 세조가 행차하였을 때 발견한 신정(神井)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적어 놓았고, 이와 관련한 기문과 비문을 실었다. ‘정퇴서원’이 독립 항목으로 설정된 점도 눈에 띈다. 이 항목에는 서원의 위치와 건립 시기,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비롯해 강백년(姜栢年), 이순신(李舜臣) 등 10인의 위패가 봉안된 사실을 기록하였다.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온양군의 읍지가 빠져 있어 항목 구성과 내용을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읍지는 19세기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호서읍지(湖西邑誌)』 등 이후에 편찬된 온양 읍지의 저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조 대에 편찬된 읍지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읍지이다. 이 읍지의 호구와 전부 항목에 기록한 수치는 18세기 말 온양 지역의 사회경제적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된다. 또한 온천 항목의 상세한 내용을 통해 온양 지역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