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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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
개념
기악을 중심으로 하여 5명에서 10명 안팎으로 편성되어 실내 혹은 작은 규모의 연주장에서 연주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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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기악을 중심으로 하여 5명에서 10명 안팎으로 편성되어 실내 혹은 작은 규모의 연주장에서 연주되는 음악.
내용

일반적으로 순 기악적인 것이 올바른 형태이나, 현대적 의미에서는 독창이나 인성(人聲)이 포함되기도 한다.

원래 실내악의 어원은 이탈리아어의 무지카 다 카메라(Musica da Camera)에서 온 것으로 소나타 다 카메라(Sonata da Camera)와 관련이 있는 말로서, 극장이나 교회에서 연주되는 음악과 그 밖의 음악을 구별하기 위하여 17세기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기 시작하였다.

즉, 카메라(Camera)는 왕궁이나 귀족들의 저택 안 사랑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chamber music’의 번역어로서 1930년대부터 이러한 개념이 도입되었다. 오늘날 실내악으로 많이 연주되는 음악들은 바로크시대의 소나타들로서, 교회음악과 구분하고자 하는 원래의 뜻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며 포괄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실내악의 기본 구조는 소나타형식의 4악장제를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기까지 유지해왔다.

실내악곡은 연주자 수에 따라 2중주·3중주 등으로 불리고, 한정된 의미로는 9중주까지를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으며, 현악기·관악기, 그리고 때로는 타악기까지 여러 가지 다른 편성의 작품들도 포함하고 있다.

실내악은 고도의 구성력과 연주 기교·감상력 등을 요구하는 음악으로서 음악의 완성도에 세련미가 전제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 실내악단의 개념이 도입된 것은, 진정한 의미의 실내악 연주단체는 아니나 1932년 제1바이올린에 홍난파(洪蘭坡), 제2바이올린에 홍성유(洪盛裕), 제3바이올린에 이영세(李永世) 등 3인으로 구성된 난파트리오로서 실내악 연주단체를 구성한 것이다.

그 뒤 채동선(蔡東鮮)이 올포이스 4중주단을 조직하여 제1바이올린에 채동선, 제2바이올린에 이영세, 비올라에 윤낙순(尹樂淳), 첼로에 김인수(金仁洙) 등이 모여 연주를 하였고, 그 뒤 채동선 4중주단으로 이름을 바꾸어 비올라에 이혜구(李惠求), 첼로에 나운영(羅運榮), 일본인 시미스 등이 참여하였다.

본격적인 현악4중주단의 연주는 1936년 1월 29일 YMCA 강당에서 가졌으며, 하이든을 비롯한 모차르트의 작품 및 베토벤 작품 18의 1을 연주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1930년대 후반에는 김생려(金生麗) 4중주단의 연주활동도 있었다.

피아노 3중주단으로는 1945년 이전부터 활동해오던 서울3중주단이 그 효시로 정희석(鄭熙錫, 바이올린)·이강렬(첼로)·윤기선(피아노) 등이 1950년까지 활동하였다. 또한, 우리 나라 최초의 실내악작품으로는 1936년 채동선의 현악4중주, 1939년의 김성태(金聖泰) 작곡의 현악4중주 등이 있다.

집필자
이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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