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작품을 우리 손으로’라는 기치 아래 한국음악의 창작과 연주의 향상을 음악인 스스로가 일으킨다는 목표 아래 발족하였다. 초대 사무국을 발족하여 조상현(曺相玄)·이상만(李相萬)이 주동이 되어 추진하였고, 당시 문화공보부장관 신범식(申範植)의 재정적 지원 아래 양악 80주년기념의 분위기를 이용하여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성대한 공연을 가졌다.
제1회는 1969년 10월27일부터 11월 2일까지 국립극장과 시민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음악제의 성격을 전통적인 음악에서부터라고 설정하여 전야제는 종묘에서 횃불을 켜고 종묘제례악의 부활공연으로 시작되어, 생존 작곡가들의 작품이 초연되었다.
또 한국창작의 온상이라는 기치 아래 제2일에는 가곡의 밤으로, 당시 중견작곡가 나운영(羅運榮)·김진균(金晉均)·김세형(金世炯)·조두남(趙斗南)·이호섭(李瑚燮)·김동진(金東振)·금수현·박태준(朴泰俊)·장일남(張一男)·이흥렬(李興烈)의 작품이 연주되었고, 제3일에는 실내악으로 박중후(朴重厚)·윤양석·이경희·이영자·강석희(姜碩熙)·김정길 등의 중견 및 비교적 젊은 신진들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중견작곡가 김성태(金聖泰)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제4일에는 이연국·윤해준·백병동(白秉東)·정윤주·조병옥 등의 교향곡 작품이, 제5일에는 김규환·박재훈·구두희·성낙현 등의 합창곡이, 그리고 제6, 7일에는 김달성(金達聲)의 오페라「자명고」가 공연되는 등 당시 대표적 경향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제2회는 1970년 10월 5일부터 10월 8일까지 시민회관과 국립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이후 매년 한 차례씩 열리고 있으며, 2000년 5월 29일에서 6월 1일까지 제32회 음악제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개최가 되었다. 작품은 위촉작품과 공모작품으로 나누어 선정하고 있으며, 매년 20편에서 30편의 신작이 초연되는데, 30여 년 간 지속되는 동안 연인원 600여명의 작곡가가 관현악곡, 합창곡, 실내악곡, 가곡, 독주곡, 오페라 등 600여 편의 신작을 발표하였다. 2001년부터는 서울창작음악제로 명칭을 변경하여 새로운 작품의 확충 및 신인 발굴, 육성에 더욱 힘쓰고 있으며, 2008년 6월11일부터 6월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체임벌홀에서 제40회 서울창작음악제를 개최하였다. 따라서 한국의 작곡가는 대부분 이 음악제를 통하여 작품을 발표했거나 데뷔를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음악의 작곡가가 되려는 젊은 작곡도들을 발굴하여 작품발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신인 작곡가의 등용문과 신작발표의 산실(産室)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작곡가에게 작품료를 주지 않은 나쁜 관행을 타파하고 작품료를 지불하는 관례를 만들어 창작음악의 가치를 평가해 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으며, 한국 작품을 잘 연주하지 않은 연주가들에게 한국 작품을 연주하게 하는 새로운 풍토를 만들어 냈다. 그런 한편 서울음악제에서 출품된 작품 중 상당수가 해외에서도 연주되는 등 국제교류에도 이바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