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구장원통기(十句章圓通記)』의 저자는 고려 전기 화엄학승[^1] 균여(923973)이다. 『십구장원통기』는 십구(十句)에 대한 주석인 『십구장(十句章)』을 균여가 거듭 주석한 것으로 십구는 중국의 승려 지엄(智儼, 주2이 지은 것이 분명하지만 『십구장』의 저자는 예로부터 논란이 있었다.
균여는 『십구장』의 저자와 관련하여 법융(法融), 범체(梵體), 신림(神琳), 융불(融昢)의 저자설을 소개한다. 이들은 모두 의상의 주3이다. 균여는 이 가운데 『십구장』의 저자를 법융으로 판단했다. 다만 근대에 『십구장』 본문에 '법융대덕[融德]'이라는 문구를 근거로 법융 저자설을 부정하는 연구가 등장하였고 다시 이 문구의 맥락을 바탕으로 다시 법융 저자설을 주장하는 연구가 진행된 상태이다.
현존본 『십구장원통기』의 편찬 및 간행 과정은 총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① 지엄의 10구
이것은 지엄이 자신의 사상을 요약한 10구를 자신의 저술의 첫 장에 써놓는 단계이다.
② 법융의 『십구장』
균여의 기록에 따른다면, 지엄의 10구에 대해서 의상의 제4세 법손이자 신림의 제자인 법융이 10구에 대해서 신림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후 이에 대해 주석서인 『십구장』을 저술하는 단계이다.
③ 균여 강의 · 담림 방언 기록본
『십구장』에 대해서 균여가 문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이를 제자 담림이 방언으로 기록하여 남기는 단계이다. 이 기록본은 방언으로 기록된 탓에 후대에 이해하는 자가 드물었다고 한다. 이 기록본에는 당시 주석서가 대부분 그렇듯이 주석 대상인 『십구장』 원문은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④ 천기의 한역 · 교정 · 편집 『십구장원통기』 필사본
13세기 초중엽 천기가 계룡산 갑사의 옛 문헌들 가운데 균여 강의 · 담림 방언 기록본을 찾아내어 이를 한역하고 교정한 후 『십구장』 원문과 함께 나란히 편집하여 2권으로 만들어 필사하는 단계이다. 10구와 함께 『십구장』 원문 그리고 균여의 주석이 모두 포함된 현존본의 2권 체제가 완성되는 단계이다.
⑤ 천기 제자들의 『십구장원통기』 간행본[1250년]
천기의 제자들이 천기 입적 후 1250년에 천기 편집본을 목판본으로 간행하는 단계이다. 이것이 고려대장경 보유판에 입장되어 있는 현존본이다.
현존 『십구장원통기』는 크게 [제목]과 [본문]과 [전승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은 각 권에 [권수제]와 [권미제]가 있으며 균여의 다른 저술 현존본에 보이는 지은이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전승 기록]은 하권의 말미에 부가되어 있다.
본문은 세 가지 구성 요소, 즉 ① 지엄의 10구와 ② 이에 대한 주석으로서 본문에서는 ‘장(章)’으로 표시되는 『십구장』과 ③ 『십구장』에 대한 균여의 주석인 ‘기(記)’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지엄의 10구는 다른 구성 요소와 따로 구분되지는 않고 『십구장』에 포함되어 있으며 『십구장원통기』는 『십구장』인 ‘장(章)’과 균여의 주석인 ‘기(記)’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십구장원통기』의 전체 구성은 먼저 10구를 소개하는 부문과 이어서 10구 각각에 대한 『십구장』의 설명과 균여의 주석이 반복되는 부문으로 나누어진다.
내용과 관련하여 『십구장원통기』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지엄의 10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주4로써 다라니를 성취하여 지(地)의 법을 나타낸다.
② 글에 따라 뜻을 취하면 다섯 가지 잘못이 있다.
③ 교대(敎大)와 의대(義大)의 둘에는 다섯 가지 거듭이 있다.
④ 인분과 과분의 상대하는 모습이 뜻을 나타냄이 다함 없다.
⑤ 경문을 돌이켜 따로 소속시킴으로써 뜻의 융섭을 나타낸다.
⑥ 인드라망에 의거하여 뜻의 변제를 드러낸다.
⑦ 3세를 총괄함을 세 번 반복하여 때[際]의 무궁함을 나타낸다.
⑧ 태어남 없는 불법이 지위에 의거하여 올라가고 내려간다.
⑨ 미세하여 서로 받아들임으로써 극도로 주5함을 밝힌다.
⑩ 주6을 뛰어넘어 이치의 주7를 이룬다.
이 10구에 대해서 화엄교학, 특히 의상계 화엄에 바탕하여 주석을 한 『십구장』과 이 『십구장』에 대한 균여의 설명이 『십구장원통기』의 내용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