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항목의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송의 정원이 『대방광불화엄경』과 징관의 『대방광불화엄경소』를 합하여 120권으로 편집한 『대방광불화엄경소』의 인출본 가운데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총 41책 41권을 가리키는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병풍처럼 일정한 크기로 접은 주2 상태인데, 세로는 32.5㎝, 가로는 10.8㎝ 크기이고, 광고(匡高)는 23.5㎝이다. 판식(版式)은 테두리마다 하나의 검은 선을 돌린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본문에는 계선(界線)을 두어 20행 15자이며, 잔글씨인 소자(小字)는 40행 20자로 되어 있다. 하지만 1장(張)이 4행씩 5면으로 접혀져 있어서 다른 목록에서는 4행 15자로 표기되어 있다.
표지는 상즙(橡汁)으로 염색한 종이를 사용하였는데, 앞뒤가 온전한 것과 함께 일부가 낙장(落張)이 된 것도 있다. 표지 가운데에 주3로 그은 테두리 안에는 경의 이름과 함께 권차(卷次)를 금니로 썼고, 그 위에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의 부호를 표시하였다. 판심제(版心題)는 ‘주화엄경장차’라고 되어 있다. 각 권의 끝부분에는 정사년(丁巳年)에 창원 백월산(白月山) 남백사(南白寺)의 주지가 썼다는 기록과 수결(手決)이 묵서(墨書)되어 있다. 보존 상태와 권의 끝부분에 묵서로 기록된 내용에 의하여 불복장(佛腹藏)되었던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글자 서체는 송판(宋板)에서 유행한 전형적인 주4이며, 필획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초기에 인출된 것으로 판단된다. 종이 재질은 다듬질이 잘된 저지(楮紙)인데, 세로 발끈이 보이지 않는 고려 중기의 양상에 먹의 색 역시 선명하여 높은 수준의 목판 인쇄술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정원 편집본 『대방광불화엄경소』의 인출본 중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현존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 시대 의천(義天, 1055∼1101)이 송(宋)에 건너가 남산(南山) 혜인원(慧因院)에서 정원에게 화엄경 강의를 들었을 때, 정원이 『대방광불화엄경』 80권과 징관의 『대방광불화엄경소』 40권을 해당 부분별로 모아서 편집한 『대방광불화엄경소』 120권 1질을 의천에게 기증하였다. 의천은 이에 당시 항주(杭州)의 일류 각수(刻手)인 엄명(嚴明) 등에게 목판 제작을 주문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1087년 3월에 송(宋)의 상인(商人) 서전(徐戬) 등이 제작된 목판 2900여 판을 납품하였다. 수입된 목판은 이후 여러 차례 주5되었는데, 이 때 경우에 따라서, 예를 들어 1372년(공민왕 21)에는 오관산 영통사에서 앞 부분에 변상도를 추가로 새겨 넣어 간행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일본이 계속 고려재조대장경 목판 등을 요구하자 1424년(세종 6)에 그 대신 이 목판을 일본에 넘겨주었다. 일본에서는 교토의 상국사(相國寺)에 보관했지만 오늘날 그 행방은 알 수 없다. 현존본은 대부분 1087년에서 1424년 사이에 인출된 것이고 조선 시대 간기를 가진 인출본은 보이지 않는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고려의 요청에 따라 송나라에서 경판을 완성한 뒤 고려에 보내온 역사적 기록을 증명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아울러 일본으로 다시 사급(賜給)되어, 중국과 한국, 일본의 불교 문화 교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또한 의천이 완성하려던 제종교장(諸宗敎藏)의 완성 과정과 경판의 후대 전래 사실 및 실물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