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은 1960년대 현실 비판적인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동학운동, 백제, 4·19혁명, 중립 사상, 장시, 장편 서사시 등의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보여주었다. 193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하며 문단에 나왔다. 1963년에 첫 시집 『아사녀』가 출간되었고, 1967년에 펜클럽 작가 기금을 받아 장편 서사시 「금강(錦江)」이 『장시 · 시극 · 서사시』에 수록 · 출간되었고, 1969년 간암으로 별세한 후 1975년 『신동엽 전집』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다.
『아사녀』는 1963년 문학사(文學社)에서 간행한 신동엽의 첫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진달래산천」 · 「풍경」 · 「눈나리는 날」 · 「그 가을」 · 「빛나는 눈동자」 · 「정본문화사대계(正本文化史大系)」 · 「산사(山死)」 · 「이곳은」 · 「산에 언덕에」 · 「내 고향은 아니었네」 · 「아사녀(阿斯女)의 울리는 축고(祝鼓)」 · 「꽃대가리」 · 「미쳤던」 · 「아니오」 · 「나의 나」 · 「완충지대」 · 「힘이 있거든 그리고 가세요」 ·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등 18편이 제3부로 나누어져 수록되어 있다.
작자의 말에 의하면 이 시집의 1부는 방랑 생활과 군대 생활이 한창인 어려웠던 서른 고비에 쓴 것이고 2부는 정착 생활을 하는 동안 쓰여진 작품들이다. 또한, “제3부의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는 1959년 1월 3일자 『조선일보』에 ‘신춘 현상문예작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당시 이 시는 심사위원들 사이에 그리고 신문사측과의 사이에 이른바 어려운 문제가 개재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로, 지상에 나타날 때 군데군데 20수행이 삭제되어 있었다. 여기 그것을 보완했다.”라고 후기에 적혀 있다. 그에 따라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여러 판본이 존재하여 유족에 의해 공개된 초고본 「선지자 서무곡(先知者 序舞曲)」(1956~1958), 『조선일보』 신춘문예 투고본, 입선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1959), 『아사녀』 시집본(1963), 『신동엽전집』 창비사본(1985) 등처럼 조금씩 개작된 텍스트가 존재한다.
“유월의 하늘로 올라보아라./황진이 마당가 살구나무 무르익은 고려 땅, 놋거울 속을 아침저녁 드나들었을 눈매 고운 백제 미인들의./지금도 비행기를 바라보며 하늘로 가는 길가엔 고개마다 괴나리봇짐 쇠바퀴 밑으로 쏟아져단 흰 젖가슴의 물결치는 아우성 소리를 들어보아라.”(「아사녀의 울리는 축고」), “아시아와 유럽/이것저곳에서/탱크부대는 지금/쉬고 있을 것이다.//일요일 아침, 화창한/토오꾜오 교외 논둑길을/한국 하늘, 어제 날아간/이국(異國)병사는 걷고.”(「풍경」), “다만 억천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고고(孤孤)히/눈을 뜨고/걸어가고 있었다.//그 빛나는 눈을/나는 아직/잊을 수가 없다.//그 어두운 밤/너의 눈은/세기(世紀)의 대합실 속서/빛나고 있었다”(「빛나는 눈동자」)
이 시집은 백제의 유민(遺民)과 한국전쟁, 4‧19혁명을 연상시키는 시적 장면들로부터 고대사에서 현대사로 이어지는 민중의 비극을 접맥시키고, 한국전쟁을 세계 전후사 속에서 관측하고, 격동의 시대 속에서 자기를 상실하지 않은 역사적 주체의 시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1960년 7월 발간된 『학생혁명시집』에 실린 작품 「아사녀」부터 신동엽 시에 백제와 아사녀의 시어가 등장한다. 이들 시어는 『아사녀』에서 역사 의식과 민중 의식으로 드러나며 『금강』(1967)과 『신동엽전집』(1975)에 이르면 아사달과 아사녀, 동학군의 민중 표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 1960~1970년대 급부상한 민족주의, 민중주의 담론과 결합된다.
『아사녀』는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휴전, 혁명 등에 대한 역사의식과 문명비판 정신을 보여준 신동엽의 첫 번째 시집이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중심으로 드러난 역사의식과 저항정신은 「시인정신론(詩人精神論)-전경인론서화(全耕人論序話)」(『자유문학』, 1961.2)에 따라 전경인 정신으로 집약해 평가된다. 신동엽은 인류 역사를 원수성(原數性), 차수성(次數性), 귀수성(歸數性)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인간을 쟁기꾼 ‘전경인’으로 인식하고 『아사녀」는 그와 같은 그의 시정신이 표상된 시세계이다.
이 시기는 4‧19혁명 이후 민족주의 담론이 급부상하면서 전통성과 주체성의 회복 문제가 제기되던 무렵이다. 역사학도였던 신동엽은 백제의 석공 부부 아사달과 아사녀, 무명의 동학군 등을 시 속에 등장시켜 저항적 민중의 표상을 통해 당대 민족주의 담론에 접속한다. 당시 신동엽의 시문학은 복고주의라는 지적도 받았지만 전통 계승의 차원보다 민중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