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은 영미 모더니스트들의 이미지즘과 주지주의, I.A. 리처드의 과학적 시학 등의 서구 현대시 사상을 도입한 이론가이자 1930년대 모더니즘 시론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 등의 창작 활동을 한 시인이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및 시부 위원장을 맡으며 주1을 표출했고 『문학개론』(시문화연구소, 1946), 『시론』(백양당, 1947), 『바다와 육체』(평범사, 1948) 등 논저와 수필집을 발간하며 활발한 저서 활동을 하던 중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납북되었다.
『바다와 나비』는 A5판, 106면으로 되어 있고, 김기림의 세 번째 시집으로 1946년 4월 신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주2로서 「머리ㅅ말」이 있고, 주4로서 「모다들 돌아와 있고나」 외에 40편의 시를, 제1부에는 「우리들의 팔월(八月) 돌아가자」 등 8편, 제2부에는 「바다와 나비」 등 6편, 제3부에는 「바다」 등 23편, 제4부에는 「쥬피타 추방(追放)」, 제5부에는 「세계(世界)에 웨치노라」와 같이 5부로 나누어 수록하고 있다.
저자도 「머리ㅅ말」에서 밝혔듯이, 제2·3·4부에 모은 작품들은 모두 그의 시집 『기상도(氣象圖)』와 『태양(太陽)의 풍속(風俗)』 이후 8·15 이전까지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된 것들이고, 나머지 제1·5부에 편성된 작품들은 해방 후에 쓴 것들이다.
「지혜(知慧)에게 바치는 노래」 등 제1부의 시편들의 대부분은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것들이다. 제4부의 「쥬피타 추방」은 천재 시인 이상(李箱)의 죽음을 애도(哀悼)한 시이며, 제5부의 「세계에 웨치노라」는 당시의 정치적 혼란상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제3부에 수록된 시편 가운데서 「동방기행(東方紀行)」은 10편의 시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김기림이 일본 동북제대(東北帝大) 유학 시절에 쓴 여행시편(旅行詩篇)들이다. 이들 가운데서 8·15해방 이후에 쓴 제1·5부의 시편들은 네 번째 시집 『새노래』의 시편들과 그 경향을 같이하고 있다.
제2·3·4부의 시들은 8·15 이전의 작품들이나, 『기상도』까지의 전기 시들에 나타난 주지적 경향과는 달리, 정감(情感)과의 조화(調和)를 의도한 시적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의 장래」에서 김기림은 “지성과 정의(情意)의 세계를 가르는 것은 낡은 것”이라고 하여 지성과 정의(情意)를 통일한 전체적 인간이 바로 ‘시의 궁전’임을 역설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감정을 배제한 투명한 지성이란 쉽사리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지(知)와 정(情)이 합일된 전체 인간으로서 체득되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론이 반영된 대표적인 작품으로 「바다와 나비」를 꼽을 수 있으며, 「바다」, 「못」 등 일련의 시작(詩作)에도 이와 같은 시적 경향이 나타난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바다와 나비」는 1939년 『여성』에 실렸던 시이고 내용은 “아모두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 흰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려서 /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도라온다. //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이다. 사나운 바다에 나비를 대비시켜 ‘식민지 현실과 나’와 같이 서로 대립되는 상황과 정서를 보여주었다. 바다의 심상에서 들과 나비를 유추한 김기림의 상상력은 종래의 시와 달리 시의 현실적 기능을 중시한 영국 시인 스펜더(Stephen Spender)의 「바다 풍경」과의 관련성 속에서 독해된다. 한편 문학사적으로 이 시는 식민지 근대 문인들의 정신사적 모순인 ‘현해탄 콤플렉스’가 작용한 근대문명 비판, 주3 유학 후 생활 감각을 수용한 시, 병참 기지화된 식민지 사회에 대한 반영 등으로 해석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