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전기 973년(광종 24), 북계 지역에 설치한 진(鎭).
위치
형성 및 변천
『고려사』 병지 성보조(城堡條)에 기록된 안융진 성곽의 규모는 349칸이다. 문은 4개소가 있었고 수구(水口), 성두(城頭), 차성(遮城)이 각기 1개소가 있었다. 주현군조(州縣軍條)에 따르면 안융진에는 진장(鎭將) 1인, 낭장(郎將) 1인, 별장(別將) 2인, 교위(校尉) 4인, 대정(隊正) 8인, 행군(行軍) 206인, 정용(精勇) 2대, 좌군(左軍) 3대, 보창(保昌) 1대, 신기(神騎) 11인, 보반(步班) 27인, 백정(白丁) 33대의 주진군(州鎭軍)이 편성되었다.
의의 및 평가
이 때 중랑장(中郞將) 대도수(大道秀)와 낭장 유방(庾方)의 활약으로 고려는 안융진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소손녕은 다시 진군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 고려가 항복할 것을 재촉하였다. 이를 계기로 서희(徐熙)와 소손녕의 외교 담판이 열렸고 고려는 강동 6주(江東六州)를 확보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안주섭, 『고려 거란 전쟁』(경인문화사, 2003)
- 통일원 정보분석실, 『북한의 자연지리와 사적』(통일원, 1994)
논문
- 윤경진, 「고려 현종말~문종초 북계 주진 설치와 장성 축조」(『군사』 79,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1)
- 윤경진, 「고려 태조~광종대 북방 개척과 주진 설치: 『고려사』지리지 북계 주진 연혁의 분석과 보정」(『규장각』 37,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소, 2010)
- 송용덕, 「고려전기 국경지역의 주진성편제」(『한국사론』 51,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2005)
- 신안식, 「고려전기의 북방정책과 성곽체제」(『역사교육』 89, 역사교육연구회, 2004)
- 윤무병, 「고려북계지리고(상)」(『역사학보』 4, 역사학회, 1953)
- 윤무병, 「고려북계지리고(하)」(『역사학보』 5, 역사학회, 195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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